“중장년 세대는 자의적인 사직(辭職)보다 원치 않은 사직을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분들은 사직 후 큰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게 됩니다. 도움을 받는 데에도 익숙하지 않은 세대라 중장년 고용 정책은 좀 더 적극적이고 친근할 필요가 있습니다.”(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
“중장년은 재취업의 문턱을 넘기 어려워합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일을 해도 될까’라고 생각을 하다가도 입사하고 나면 ‘내가 다시 사회에, 기업에, 조직에 기여를 할 수 있구나, 청년들과도 일을 할 수 있구나’ 등을 느끼면서 자기 효능감을 찾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장년 채용과 인식 개선에 대해 범사회적 고민이 필요합니다.”(길여진 한국맥도날드 이사)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살 날이 길어진 만큼 일할 기회도 많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권 교수의 지적처럼 원치 않는 사직을 하는 중장년이 적지 않고, 길 이사의 설명처럼 다시 일하려 해도 재취업은 쉽지 않다. 사회 안정과 경제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중장년의 지속적인 경제활동의 보장은 필수적이다. 이에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지난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서울시 중장년 정책포럼 2025’를 열고 중장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방향과 제도적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포럼은 ‘중장년과 웰페어노믹스’를 주제로 한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기조 강연으로 시작됐다. 전 교수는 ‘중장년과 웰페어노믹스(Welfarenomics·복지경제학)’를 주제로, 중장년의 복지와 경제 성장을 연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장년을 단순한 정책적 부담이 아닌 산업의 주체로 재정립해야 한다”며 “법정 정년연장을 통해 근로소득 확보, 노후 불안 해소, 인구감소 시대의 노동력 부족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소랑 서울시50플러스재단 정책연구팀장은 ‘초고령사회, 왜 중장년에게 주목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중장년 세대가 경제와 소비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높은 근로 의욕과 풍부한 인적 자본을 보유한 세대라고 정의했다. 강 팀장은 “중장년 일자리 정책은 ‘복지’가 아닌 경제 활성화를 위한 ‘투자’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법정 정년연장보다는 재취업 활성화를 먼저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년연장은 현직에 있는 중장년에게만 해당하며, 이미 직업을 잃고 미취업 상태인 중장년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강 팀장의 생각이다. 또한 “고령자고용법, 고령자고용안전지원금, 청년고용법 등 시니어나 청년 세대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는 있지만 40세 이상을 위한 법적 근거는 없다”며 “중장년을 위한 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의 중장년 인력 현황과 정책 방향’에 대해 논의하면서 중소기업의 인력 부족이 심화하고 있지만 청년의 중소기업 선호도는 여전히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임원급보다는 실무 경험이 풍부한 차장·부장급이 중소기업에서 잘 적응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소기업에 대기업 실무자급 퇴직 인력 채용을 지원하면 중소기업의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50대에서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나 무급가족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7.1%, 60세 이상에서는 38.7%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며 “자영업자 미래일자리전환센터(가칭)를 설치해 폐업을 앞둔 고령의 비임금근로자와 중소기업을 연결한다면 중소기업의 빈 일자리를 채우고 고령의 비임금근로자에게는 재취업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지현 서울시50플러스재단 정책연구팀 책임은 ‘다시 뛰는 중장년을 위한 서울런4050 그간의 성과와 한계’ 발표를 통해 서울시가 그간 추진해 온 ‘서울런4050’의 성과를 설명했다. 김 책임에 따르면 서울런4050 프로그램에 참여한 중장년의 월평균 소득은 33만 원 증가했다. 삶의 만족도와 사회적 관계는 각각 21.4%와 10.2% 상승했다. 그럼에도 중장년 지원 프로그램에는 한계가 있다. 기존 정책들은 주로 실업 상태인 중장년 중심이어서 현직에 있으면서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은 지원을 받기 어렵다는 것. 김 책임은 "중장년은 전일제 일자리뿐만 아니라 사회공헌, 파트타임, 플랫폼 노동 등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를 원하고 있다”며 “이러한 수요를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성과 지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포럼에서는 서울시의 실정에 맞는 새로운 고용 모델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서울시 중장년 고용 현황과 초고령화 대응을 위한 정책 방향’에 대해 발표한 김진하 서울연구원 경제혁신연구실 연구위원은 서울이 생산연령인구 감소와 노동력 고령화, 청년층 감소라는 삼중고에 직면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생애주기 맞춤형 고용 정책인 ‘서울4064(가칭)'를 제안했다. 40대는 조기 경력 전환을 지원하고, 50대는 직무 전환과 안정적 고용 유지를, 60대는 맞춤형 시간제 일자리를 각각 제공하자는 것이다.
지자체 차원의 계속 고용 유도 방안으로 ‘서울형 안전계속고용제(가칭)’의 시행도 제시됐다. 중장년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직종에서 공공 시범 사업을 우선 진행한 뒤 민간 부문으로 확산하자는 것이다. 이어 일자리 지속을 위해 사회공헌형→공공형→경력전환형→민간형 등 단계별로 일자리를 연계하는 ‘서울4060+ 패키지(가칭)’도입도 언급됐다.
이어지는 토론에서는 손경희 대전중장년지원센터 사무장이 ‘지방 도시의 중장년 일자리 사업 현황과 지원 방향’을 발표했다. 그는 청년층 인구 유출과 일자리 부족으로 지방 노동시장이 위축되면서, 중장년의 고용 기회도 제한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지역 특성에 맞는 일자리는 단기적이고 제한적이며, 미래 일자리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바이오, 의료, 연구개발 등 대전의 강점인 전략 산업을 활용한 지역 기반 고용 모델을 발굴하고, 중앙정부와 협력해 지자체 맞춤형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중장년 계속고용정책의 기능적 의의와 법제도 정비의 당위성’에 대해 논의했다. 권 교수는 “사회와 가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중장년은 고용노동법제도 상 사회적 보호 필요성이 가장 큰 대상이다”고 강조했다. 중장년의 계속고용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중장년의 이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와 계속고용과 재취업에 필요한 자기 계발 기회를 기존 사업장에서 제공하는 등 새로운 계속고용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기존의 수직적 조직 문화에서는 후배 직원이 진급할 경우 고령 근로자는 퇴출되는 구조가 형성되므로 고령 근로자의 경력 활용과 계속근로를 위해서는 수평적 조직 문화로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명 서울시50플러스재단 대표이사는 개회사를 통해 “서울시 중장년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전체 중장년을 아우를 수 있는 경제 해법과 정책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며 “오늘의 논의가 중장년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영상 축사에서 “초고령 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진 중장년의 역할에 발맞춰 관련 정책에도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며 “단순히 숫자로만 보여주는 일자리가 아닌 지속 가능한 (중장년) 고용 환경을 만들겠으며, 혁신 정책으로 응원하겠다”고 전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오는 9월 23일 제2차 포럼을 개최하고, 이날 논의된 정책 제언과 제도 개선 방향을 토대로 중장년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 로드맵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