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형 외국인선수' 레오 넘을 수 없는 '기록의 전설' 향해 간다

2026-01-01

프로축구 K리그와 프로야구 KBO리그를 상징하는 외국인 선수를 한 명씩 꼽는다면. 응원팀과 기억에 따라 대답은 천양지차일 테다. 기록에 초점을 맞춘다면. K리그는 3년 연속(2011~13년) 득점왕 데얀(몬테네그로), KBO리그는 전무후무한 '40(홈런)-40(도루) 클럽' 문을 연 에릭 테임즈(미국)로 답이 모이지 않을까. 프로배구 V리그라면. 이론의 여지가 없다. 현대캐피탈 레오(35·쿠바)다.

레오는 2025년의 문을 닫던 지난달 31일 KB손해보험 원정경기에서 V리그의 신기원을 또 열었다. 개인 통산 후위공격 2200개를 달성했다. 앞서 그 열흘 전인 지난달 20일에는 개인 통산 7000득점 고지에 올랐다. 둘 다 남자부 최초다. 따라올 선수가 안 보인다. 먼저 레오의 통산 득점은 7082점(지난달 31일 기준)이다. 2위가 은퇴한 박철우 우리카드 감독대행이다. 현역 선수는 4983점의 OK저축은행 전광인(34)이 그다음이다. 레오에 2000점 넘게 뒤진다. 나이와 리그 경기 수 등을 고려할 때 좁힐 만한 격차가 아니다.

후위공격은 더하다. 2~5위는 모두 은퇴(박철우·문성민)했거나 V리그를 떠난 외국인 선수(가빈·타이스)다. 현역 2위이자 통산 6위가 1340개의 KB손해보험 비예나(32)다. 레오와 900개 가까이 차이 난다. 레오가 두세 시즌만 더 뛰면 통산 득점과 후위공격은 사실상 넘볼 수 없는 기록이 된다.

레오의 후위공격 2200개에는 숫자 이상의 의미가 담겼다. 그가 '적응형 외국인 선수'라는 점이다. 후위공격은 전통적으로 아포짓 스파이커(라이트)의 전유물이다.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미국 대표팀이 기상천외한 전술을 도입했다. 전위의 미들브로커가 속임수 점프를 뛰고 후위의 아웃사이드 히터(레프트)가 중앙에서 속공 형태로 후위공격을 시도했다. 이른바 '파이프' 공격이다.

2012년 삼성화재에 입단한 레오는 아포짓 스파이커였던 기존 외국인 선수와 달리 아웃사이드 히터였다. 당시 국내 최고 공격수였지만 아포짓 스파이커밖에 맡을 수 없는 '왼손잡이' 박철우로 인해 삼성화재는 아웃사이드 히터를 구했다. 그런데 리시브 능력이 기대에 못 미쳤다. 박철우가 공격보다 리시브와 블로킹에 전념하고, 대신 팀 공격 절반 이상을 레오가 책임졌다. 속칭 '몰빵 배구'의 탄생 배경이다. 삼성화재는 레오의 '괴물급' 활약으로 2012~15년 챔피언결정전을 4연패 했다.

튀르키예·중국·아랍에미리트를 돌며 활약한 레오는 2021년 OK금융그룹(현 OK저축은행)을 통해 V리그에 복귀했다. 25살에 V리그를 떠났다가 31살에 돌아온 레오는 달랐다. 경기 운영은 더 노련했고, 리시브 등 수비 가담은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2023년 부임한 오기노 마사지 감독은 특정 선수보다 시스템에 의존하는 전술가였다. 그래도 레오의 공격 점유율은 높았고, 꾸준한 공격과 함께 수비에도 크게 기여했다.

2024년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레오는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었다. 현대캐피탈은 허수봉·전광인 등 특급 국내 아웃사이드 히터를 보유한 팀이다. 레오는 아포짓 스파이커로 자리를 옮겼다. 리시브 부담이 줄었다. 그렇다고 수비를 완전히 내려놓지 않았다.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외국인 선수는 감독의 전술 선택지를 넓히고 동료의 체력 부담을 줄인다. 현대캐피탈이 대한항공에 뒤진 채 전반기를 마쳐도 챔피언 후보로 꼽히는 이유다.

통산 7000득점 돌파 후 레오는 말했다. "아무도 기록을 깨지 못할 만큼 득점을 더 올리고 은퇴하는 게 목표다." 그때까지 몇 개의 트로피를 더 들어 올릴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레오가 기록에 관한 한 'V리그를 상징하는 외국인 선수'가 될 거라는 점이다.

장혜수 스포츠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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