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에 갇힌 여성 감독들, 상업영화 벽 여전히 높지만…[여성 감독의 성장과 장벽③]

2024-10-09

"여전히 보수적인 시장, 여성 감독 역할 제한 아쉬워"

윤성은 평론가 "여성 감독들의 활약에 더 상황 좋아질 것이라 기대"

"최근 부지영 감독님의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를 다시 보게 됐다. 14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지금 개봉해도 손색없는 작품이었다. 담긴 이야기도 많았다. 그런데 부 감독님이 지도교수 활동만 하고, '카트' 이후 신작 소식이 없다. 부 감독님의 다음 작품을 바라는 영화인과 관객이 많은데 왜 다음 작품이 나오지 않는지, 지금의 상황과 연관이 있지 않겠나"

실력을 갖춘 여성 감독들이 상업영화에서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하는 현실을 두고 김채희 광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이 한 말이다.

2024년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3 한국인지 성인지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순제작비 30억원 이상 상업영화 35편 중 여성 감독이 연출한 작품은 임순례 감독의 '교섭' 1편 뿐이었다. 2019년엔 5명(45편), 2020년엔 4명(29편), 2021년엔 2명(17편), 2022년 3명(36편)으로 최근 5년간 가장 낮은 수치다.

통계 발표 후, 영화인들은 팬데믹 이후 영화 시장 위축이 상업영화 제작진들을 보수적으로 바꾸었고, 이는 여성 감독들의 기회 박탈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이는 새로운 시각과 창의성이 점점 더 요구되는 한국영화계가 오히려 퇴보한다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남성 감독들이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클리셰와 상업 공식을, 여성 감독들을 통해 탈피할 기회를 걷어차는 꼴이라는 것이다.

김채희 위원장은 "독립영화, 저예산영화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여성 감독들이 많은데 상업영화에서는 현저하게 비율이 떨어진다. 상업 장편으로 데뷔하더라도 차기작이 나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팬데믹 이후 한국영화가 침체기라는 말을 듣고 있는데 흥행 실패 영화들을 살펴보면 클리셰 범벅인 영화들이 많다"라며 "(영화에 담기는) 여성 감독의 시선은 덜 다뤄졌던 부분이다. 여성 감독이 나오면 반드시 새로운 영화가 나올 것이다. 한국영화 침체기에 변화를 이끄는 것은 여성 감독들이란 생각이 든다. 정말 더 많은 여성 감독에게 기회가 가야 된다"고 전했다.

'우리 집'(윤고은), '벌새'(김보라), '찬실이는 복도 많지'(김초희), '남매의 여름밤'(윤단비), '우리들'(윤가은),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김세은), '경아의 딸'(김정은), '정순'(김지혜) 등 국내외 유명 영화제에서 호평받으며 관객을 사로잡았던 독립영화는 여성 감독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실제로 서울독립영화제에서의 여성 감독들의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3년 서울독립영화제 작품 공모에서 여성 감독의 출품 비율은 약 48.8%(1426명 중 656명)로, 2017년 31%(1271명 중 396명)에서 크게 증가했다. 상영작 중 여성 감독의 비율은 56.35%로, 출품 비율보다도 높았다. 이 같은 통계는 여성 감독들이 독립영화계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걸 증명한다.

이처럼 독립영화와 저예산영화에서 여성 감독들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야기를 펼치며 두각을 드러내고 있지만 왜 상업영화로 가는 길목은 좁은 걸까.

한 영화 관계자 A씨는 "영화계가 사회를 향해 열린 시선이나 화두를 제시하고 있지만, 보수적인 걸로 따지면 어느 업계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 여전히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성별에 따른 고정된 역할이나 기대가 여성 감독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다. 개선되고 있다고는 현장의 중심에서는 여전히 남성주의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영화 스태프 B씨는 "젊은 여성 감독들이 투입되면 함께 손발을 맞춰야 하는 건 오랜 경험을 가진 스태프들이다. 이때 마찰을 빚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에도 한 유명 작품에 독립영화계에서 활약한 여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기로 내정돼 있었지만, 의견이 조율되지 않아 감독이 교체됐다. 정당한 명분이라면 납득하겠지만 '여자라서', '어려서'라는 말로 무시하는 드라마 같은 상황이 아직도 영화 현장에 존재한다"라고 귀띔했다.

여성 감독들의 상업영화 진출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영화진흥위원회와 같은 정부 기관의 정책적 지원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재는 영진위 지원을 받아 꾸린 단체 든든이 홀로 이 역할을 하고 있다. 2018년 3월 개소한 든든은 영화산업 내 성평등한 환경 조성을 위해 영화계 성폭력 피해자 지원, 콘텐츠 제작, 교육 여성 감독 및 영화인들이 다방면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윤성은 영화 평론가는 "지금 팬데믹 때문에 한국영화 자체가 많이 제작되지 않고 있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본다. 올해만 해도 '시민덕희', '그녀가 죽었다', '파일럿' 등 좋은 여성 감독들의 영화가 대중의 호응을 얻어 흥행하지 않았나. 또 하반기 이언희 감독의 '대도시의 사랑법'도 개봉한다. 올해는 여성 감독들이 훌륭한 영화들을 내놔서 상황은 조금 더 좋아질 것이라고 본다. 아직 갈 길이 멀다라고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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