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계약금 50만원도”…작품 보다 출판 권력이 낳은 ‘하청 작가’

2024-10-11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우리나라 작가 사회의 명암을 돌아보게 한다. 한 작가처럼 평단과 대중을 사로잡은 작가는 손에 꼽을 만큼 적다는 지적이다. 대부분 작가는 출판 권력이라고 불리는 출판사와 불투명한 계약을 맺고 턱없이 낮은 인세를 받으며 버티거나 대중의 무관심 속에 꿈을 포기한다.

작가노조 준비위원회는 올 6월 26일 서울국제도서전을 한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앞에서 작가노동자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작년부터 작가 노동자의 힘든 삶을 알리기 위한 대외 활동을 시작했다. 준비위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글쓰기는 각자 작업실에서 이뤄지는 독립적 노동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종속적인 하청 노동과 같다”며 “대부분 작가는 공정한 계약과 임금 지급을 요구하다가 체념과 절망을 거듭해 길을 잃는다”고 밝혔다. 작가가 출판사란 원청을 둔 하청노동자라란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황모과 SF(Science fiction film) 작가는 5년 차 전업 작가다. 그가 작가 데뷔 후 처음 맺은 계약서에는 그의 날인이 없었다. 날인이 없어도 계약 효력이 있다는 출판사의 황당한 권유를 믿었다. 그는 원고 인도일만 적혀 있고 원고료 입급 시기가 없는 계약도 맺었다.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라면, 자신의 월급 날짜를 모르는 셈이다. 황 작가는 “지연된 원고료를 받기 위해 굴욕감을 참아냈다”며 “아무리 애써도 극소수인 베스트셀러 작가 외 작가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우리 칼럼니스트는 작가란 이름을 잃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는 “부모님은 지인에게 나를 기자라고 소개하고 저 스스로도 대학원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며 “자가 시스템은 좋은 글보다 팔리는 글을 쓰는 존재가 되도록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상황은 출판 시장의 성장세를 보면, 납득되기 어려운 구조란 지적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2022년 신간 발행 종수는 6만1181종으로 12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책 평균 정가도 1만268원에서 작년 1만8633원으로 증가했다. 판매 수입이 제대로 작가에게 돌아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준비위의 ‘작가노동 연재글’에 참여한 김현진 소설가에 따르면 선인세로 불리는 출판 계약금은 100만~200만 원 수준이다. 영세 출판사와 계약을 하면, 50만 원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신인 작가의 인세는 일반적인 단행본 정가 10% 보다 낮은 7~8%에서 정해지기도 한다. 김 소설가는 “만일 대부분의 책처럼 초판으로 출간이 멈추면 작가가 번 돈은 출판 계약금 200만 원이 전부”라고 설명했다.

이는 작가들이 생계 유지하기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작가준비위가 올 4월 46명의 작가들의 생활비를 조사한 결과 이들의 월 평균 비용은 약 142만 원이다. 고정비인 식비와 의료비 63만 원을 제외하더라도 작업 공간 운영 및 유지비, 자료 조사 비용 등 작가 생활을 위한 비용 항목이 많다.

준비위는 내년 5월 작가노조를 결성하는 게 목표다. 준비위는 고 최고은 작가처럼 힘든 상황을 겪는 동료 작가를 홀로 두지 않겠다고 했다. 2011년 시나리오를 쓰던 최 작가는 생활고와 지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 나이는 32살이었다. 이후 정부는 예술인에 대한 고용보험 혜택 등 다양한 지원을 폈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안명희 준비위 위원은 서울경제와 통화에서 “출판사의 출판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작가 스스로 문학적 성취를 만드는 구조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출판 시장이 열악하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리나라 출판계는 세계 10위권 내 평가를 받으면서도 불공평하게 ‘파이’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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