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에게 답하다

2024-09-23

1987년, 6·29 직후 부산 기청대회 한 분과모임에서 우상호를 만났다. 10여명 정도 되었던 그 분과에는 자칭 ‘선진적 막시스트’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를 향해 개량주의자라고 비판하던 그들이 <자본론>을 읽었는지도 의문이었지만 그들이 신처럼 숭상하는 마르크스가 자신들을 포함한 아시아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있는지는 더욱 의문이었다.

헤겔이 <논어>를 읽고 격언집에 불과하다고 한 것 이상으로 마르크스는 동양에 대해 경멸적이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얘기한 역사발전 법칙의 적용대상은 서유럽에 관한 것이지 인류 보편적 역사법칙이 아니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쓴 <오리엔탈리즘>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대변할 수 없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 한다.”

여기서 그들은 동양인(아시아인)이다. 자신을 멸시하는 사람을 신처럼 숭상하는 것이야말로 마르크스가 경멸한 노예적 근성이다.

각설하고 당시 그 자리에서 그나마 합리적인 사람이 우상호였다. 그가 정치인이 된 후에도 그때의 잔상이 자리하고 있다.

1989년 나는 군에 입대했다. 나이어린 고참에게 따귀를 맞고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하면서 하루하루를 힘들어 하던 그 시기 들었던 소식이 있다.

임수경이 ‘통일의 꽃’이 되어 평양에 가서 김일성을 만난 것이다. 그것을 총 지휘했던 인물이 임종석이다. 당시 언론에서 임종석을 얼굴마담(?)이라 폄하하기도 했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민주화와 통일문제의 핵심 당사자로 사회에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반통일 세력을 준열하게 비판했던 것이 누구인가?

임종석은 그 열매로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의 맛까지 충분히 맛볼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이 다녀온 감옥을 가지고 훈장처럼 얘기한다면 민중을 모욕하는 것이다. 당시 수많은 젊은이들이 각각의 방식으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했다. 그들이 감옥대신 젊음과 시간을 희생하며 최전방 철책에서 나라를 지켰던 것이 그의 삶과 비교해 전혀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1980년대를 살아갔던 젊은이들은 ‘아침이슬’만큼이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목 놓아 외쳤다.

임종석이 통일을 반대한다고 한다. 나는 임종석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선의가 놀랍도록 앞선 역사의 사례를 복기해준다. 함석헌의 말처럼 도적처럼 찾아온 해방은 당시를 산 누구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독립이 올 줄 알았다면 그 누가 친일파의 멍에를 썼겠는가?

오늘 통일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절망적이었던 것이 독립의 길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선의로 창씨개명과 학병입대를 독려했던 것이다.

일본인과 조선인의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조선인 스스로 청원했던 것이 창씨개명이다.

지금 편안하게 앉아서 죽창가를 불러대는 이들에게 그 선의에 대해 깊이 성찰할 시간을 권유해본다. 학병독려도 다르지 않다. 간디가 인도인들에게 영국편에 서서 싸울 것을 외쳐댄 것과 그 취지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인이 일본인과 동등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의무도 동등하게 이행하는 것이 필요했고 그 핵심이 병역의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은 해방으로 실현되지 않았지만 조선인의 입대와 함께 의회의석수를 할당해주는 방안을 마련했다. 임종석이 통일반대를 얘기하는 선의가 이들 논리와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다.

김정은이 통일은 없고 적대적 2개 국가만이 존재한다고 하니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수용(?)하자고 한다면 먼저 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이 창씨개명과 학병입대 독려와 무엇이 다른가?

또 하나, 통일 포기가 진정한 평화와 민족의 안녕을 가져올 수 있는가?

임종석은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했는데 너는 그동안 뭐했냐고 묻는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다가 임종석을 비판하는 것이 역겹다고 한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아도취적이고 엘리트주의에 빠진 독선이다. 임종석과 함께 그 시대를 살았던 그 누구도 민주화와 통일에 대한 열정과 실천에서 제외할 사람은 없다.

누가 내게 통일을 위해 너를 희생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기꺼이 대답하겠다.

“내가 죽어서 통일이 찾아온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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