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론직설] “반도체 R&D 주52시간은 난센스, ‘예외 적용’ 특별법 조속 입법을”

2025-02-17

중국 스타트업이 내놓은 생성형 인공지능(AI) 모델 ‘딥시크’ 충격파가 커지고 있다. 딥시크 출시에 자극받은 챗GPT 개발사인 미국 오픈AI는 스마트폰을 대체할 AI 전용 단말기와 자체 반도체 개발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AI 시장 주도권을 쥐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는데도 한국은 AI 반도체 경쟁력 제고에 시급한 반도체특별법마저 거대 야당의 반대로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반도체특별법의 핵심은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이다. 반도체공학회 회장인 신현철 광운대 반도체시스템공학부 교수는 1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R&D 업무에 주 52시간 규제를 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난센스”라며 “예외 적용을 하지 않았을 때 초래될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먼저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5년쯤 후에는 세부 응용 분야별로 AI 반도체가 필요한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며 “우리 기업들도 모빌리티·금융·보안·의료·교육 등 특수 목적의 AI 칩 개발을 준비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국의 스타트업이 저비용·고성능의 AI 모델을 만들어냈다.

△딥시크는 중국의 AI 기술 및 AI 반도체 기술의 자립도가 높은 수준에 올라섰다는 점을 간접 증명했다. 중국의 기존 AI 대기업인 알리바바·바이트댄스가 아닌 2023년 창업한 스타트업이 이룬 성과여서 더욱 주목된다. 딥시크는 저가 반도체를 사용한 가성비 높은 기술, 중국 국내 인력을 활용한 토종 기술, 오픈소스를 채택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더 두려운 것은 중국 엔지니어의 꿈과 비전을 보여주는 량원펑 딥시크 창업자의 인식이다. 그는 “혁신은 돈이 아니라 자신감에서 나온다. 사람과 맞먹는 수준의 범용인공지능(AGI) 개발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며 혁신을 통해 기술을 선도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과감한 도전 정신이 사라지고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우리나라의 연구 풍토와 비교된다.

-미국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주도권이 약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딥시크의 파장이 만만치 않지만 엔비디아의 리더십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기반의 시장구조는 AI 반도체의 대규모 학습 및 추론에 적합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계속 발전하면 이에 맞춰 막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데이터 센터용 GPU가 필요하다. 엔비디아는 이에 대응하는 신제품을 내놓으며 주도권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현재 주로 소비되는 AI 반도체는 데이터센터, 고성능컴퓨터(HPC)용으로 한번 설치하면 10년 가까이 쓸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엔비디아와 직접 경쟁하는 것은 무리다. 시장 흐름을 주시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잡는 데 주력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회인가.

△엔비디아는 지금 ‘AI 반도체 고속도로’를 설치하고 있다. 고속도로라는 주 인프라 구축이 끝나면 세부 교통망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이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5년쯤 후에는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AI 반도체 흐름에 분명한 변화의 신호가 나타날 수 있다. 휴대폰 등 작은 시스템에 적용되는 온디바이스 AI 시장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모빌리티·금융·보안·의료·교육 등 세부 응용 분야별로 AI 반도체가 필요한 시기가 도래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세부 분야별 맞춤형 AI 반도체 개발을 준비해야 한다. 또 오픈AI가 주도하는 AI 인프라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와 같은 글로벌 사업에도 적극 참여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

-AI 분야에서 성과를 내려면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힘들 텐데.

△미국·중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돈과 사람, 인프라 모두 제한돼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폭넓게 인재를 육성하면서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AI 시대에는 1명의 최우수 인재도 필요하지만 100명의 보통 인재도 중요하다. 기술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1명보다는 2명, 50명보다는 100명이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효율적이다.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1개의 스타 기업도 중요하지만 100개의 건실한 중소기업도 있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기업 중심의 성장 전략으로 많은 성과를 냈지만 AI 시대가 되면서 그 효용성이 떨어지고 있다. 대만이나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 배경에는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대기업이 같이 살아가는 생태계가 있다. 중국의 딥시크 같은 기업도 그런 토양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었다. 우리도 크고 작은 기업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피라미드식’의 탄탄한 산업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산업 성장의 마중물이 되는 것은 결국 정책이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등 반도체 생태계를 튼튼하게 구축하기 위한 정책 발굴과 지원이 절실하다. 특히 국내 중견·중소 팹리스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기술·인프라·인력 등 전방위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연구 시설 및 초기 개발 비용 지원 등을 통해 작은 기업들도 시장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기업과 팹리스 간의 연결 고리를 찾아 지원해주는 정책도 필요하다. 반도체 글로벌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업이 끌고 정부가 밀어주면서 차세대 AI 칩 개발에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인재 육성이나 생태계 구축은 ‘화초에 물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 단기적·일시적이 아닌 체계적·지속적으로 도와줘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중국의 AI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더 심해질 것 같다.

△미국은 엔비디아 고사양 칩뿐 아니라 저사양 칩에 대해서도 중국으로의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장비의 경우 네덜란드 ASML 등의 대중국 교역이 증가했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 조치가 외려 중국의 자생력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중(對中) 제재에 따른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랐는데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딥시크가 그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중국 반도체 업체인 양쯔메모리·창신메모리의 기술 수준이 첨단 장비 없이도 한국에 근접하거나 추월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중국은 자체 시장이 커서 내부에서 만들어 사고팔면서 기술을 개선하는 것이 가능하다.

-미중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미국의 대중 제재로 우리 기업의 대중 추가 투자와 제품 판매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고 혈맹인 미국의 정책에 거스를 수는 없지 않은가. 미국의 대중 제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 다만 중국을 아예 배척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중국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시장이기 때문이다. 미중 사이에서 실리를 챙기는 ‘투트랙’ 전략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보조를 맞추면서 중국 반도체 시장도 두드리는 정교한 통상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삼성전자는 오랫동안 D램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 발전과 사업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삼성전자 위기의 원인은 기술적 부분보다는 AI 칩 성장을 간과한 전략적 미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은 삼성만이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 전체가 위기를 맞았다. 우리 반도체 산업은 마치 허허벌판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라는 근사한 빌딩 1~2채만 서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나 대만, 심지어 중국도 반도체 뿌리 기업과 중견·중소기업, 대기업이 함께 커가는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지금처럼 다양한 기술이 쏟아지는 환경에서는 선순환 생태계가 중요하다. 작은 업체가 여러 분야에서 기술 개발을 하다가 특정 기술이 떠오르면 대기업이 공동 연구 등의 형태로 참여해 구체화하는 상생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반도체 산업은 그렇지 않다. 지난 30년간의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라는 호황에 취해 있었다.

-그런데도 국회는 주 52시간제 완화를 담은 반도체특별법조차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R&D 업무에 주 52시간의 규제를 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근로시간 규제는 근로 조건이나 근로 환경 개선을 위한 것으로 육체 노동이 이뤄지는 분야 등에 필요한 제도다. 이를 R&D 업무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난센스’다. 이처럼 일을 강제로 중단하는 경직된 규제는 미국·중국·대만 등 주요국에는 없다. 최고와 경쟁하고 싶으면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한다. 량원펑 딥시크 창업자도 “개발의 비밀은 없다. 시간과 노력이 투입돼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았는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생각한다. 야당에서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을 두고 근로자 처우에 대한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보다는 예외 적용을 하지 않았을 때 초래될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먼저 살펴야 한다. 반도체특별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가 필요하다.

◆He is…

1968년 인천에서 태어나 KAIST 전기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KAIST에서 전기전자공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다임러벤츠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삼성전자 선임연구원, 퀄컴 선임연구원을 거쳐 2003년부터 광운대 반도체시스템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광운대에서 전자정보공학대학 학장으로 일했으며 올해 1월부터 반도체공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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