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등어·없징어·금마늘의 시대

2025-12-16

지난달 송년 모임 뒤 “오징어회에 딱 한 잔만 더 하자”는 선배에게 붙들려 오징어 전문식당으로 향했다. “이맘때가 제철”이라는 그의 장담과 달리, 식당의 수조는 텅 비어 있었다. 당황한 선배는 “찬바람 부는 지금이 한창 때 아니냐”고 물었으나, 직원은 “아이고, 그건 옛날 얘기”라며 손사래를 쳤다.

선배 기억이 틀린 건 아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10~12월이면 오징어 살이 오르고 맛도 절정에 달했고, 어획량도 제법 받쳐줬다. 하지만 지금은 제철, 성어기를 따지는 게 민망한 수준이다. 채낚이로 잡는 산오징어, 트롤 어업으로 잡는 신선·냉장 물량을 합쳐 연간 20만t 안팎에 이르렀던 어획량이 2020년 9000t 수준으로 줄었다. 그나마 이후 5년간 더욱 줄어 지난해엔 1000t에도 못 미쳤다. 6월 강릉·속초 등지에서 모처럼 만선 소식이 전해졌지만, 냉수대의 이상 유입에 따른 예외적 현상이었다. 7월 이후엔 동해안에서도 보기 힘든 ‘없징어’ 상태다.

세계 기후 위기에 밥상물가 폭등

국내산 확 줄고 수입도 ‘공급 절벽’

물가정책, 패러다임 전환 시급

오징어 실종 사태의 ‘주범’은 해수온 상승이다. 오징어는 14~17도에서 어군 형성이 가장 활발하고, 24도가 넘으면 알에서 깨어난 개체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그런데 한반도 해역의 수온은 몇 년째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지난해엔 10월 동해 일부 수역의 관측치가 25도를 넘었다. 전문가들은 오징어떼가 아열대로 변한 동해를 떠나 북상 중이라고 추정한다.

제철 음식이 사라졌다는 안타까움만으로 꺼낸 얘기가 아니다. 고공 행진 중인 ‘밥상 물가’ 걱정 때문이다. 지난 2일 발표된 1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2.5% 상승해 석달째 연속 2%대를 웃돌았다. 고환율에 의한 석유류의 가격 상승과 함께 농축수산물의 물가 상승(5.6%)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지수가 127.1을 기록했는데, 기준연도(2020년)인 5년 전보다 27.1% 올랐다는 뜻이다.

특히 수산물의 상승세가 가파르다. 들여다보면 고수온 등 기후 위기 탓에 국내산·수입산 모두 공급이 여의치 않은, 이른바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 양상이 뚜렷하다. ‘국민 생선’에서 ‘금등어’로 승격(?)한 고등어가 대표적이다. 10월 ㎏당 소비자 가격(1만2131원)이 작년보다 10% 이상 뛰었다. 국내 어획량 자체도 줄었지만, 이에 더해 소비자가 선호하는 중·대형이 어획량 전체의 4%대까지 떨어졌다. 수온이 예년보다 일찍 오르면서 고등어가 충분히 자라기 전에 우리 바다를 떠나고 있는 탓이다.

국내산의 빈자리를 채워왔던 노르웨이산 고등어의 공급 역시 불안하다. 국제해양탐사위원회(ICES)는 9월 노르웨이·영국 등에 내년도 고등어 어획량을 대폭 감축하라고 권고했다. 우리 바다처럼 수온 상승이 심각한 북대서양도 고등어 자원의 붕괴 위험에 직면했기 때문인데, 수입업체들은 당장 내년부터 수입량이 급감할 거라 우려한다. 1년 새 20%가량 오른 오징어도 사정이 비슷하다. 연근해산과 원양산 모두 줄어든 데다, 페루·칠레에서 들여오던 대왕오징어도 어획량이 급감했다.

농산물도 마찬가지다. 마늘은 2022년 이후 매년 겨울엔 이상 고온, 봄엔 이상 강우가 닥치면서 국내 수확량이 확 줄었다. 한때 수입산 마늘로 대체 가능하다고 여겼지만, 최대 생산국인 중국에 폭염·가뭄·폭우가 반복되고 물류비·환율마저 상승해 이젠 중국산과 국내산의 가격이 별 차이 없다. 배추도 한때 중국산 배추, 김치 수입이 물가 안전판 노릇을 했으나, 지금은 수입 확대 효과가 급격히 떨어졌다.

이처럼 국내산이 줄면 수입으로 대체한다는 물가 관리 공식은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에 허물어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3·2024년 연이어 기후 충격이 물가에 미치는 치명적, 파괴적인 효과를 경고하며 기후 리스크를 정책 프레임에 포함하라고 권고했다. 시간이 흐르면 완화하는 전쟁이나 환율 변동과 달리 기후 충격은 반복·누적되면서 인플레이션의 경로, 기준선까지 바꾸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기후플레이션 시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설·추석을 앞두고 으레 내놓는 ‘민생안정대책’처럼 비축 물량을 풀고, 수입을 늘리고, 할인 판매를 지원하는 방식을 답습한단 얘기다. 소요되는 재정에 비해 효과가 일시적이고, 대부분 유통단계에서 흡수돼 소비자가 체감하기 어려운 데도 말이다.

한번 데워진 지구는 식지 않는다. 당장 ‘탄소 제로(0)’를 실현해도 이미 오른 기온·수온은 되돌리기 어렵다. 물가도 마찬가지다. 한번 오르면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후 리스크를 전제로 생산·수급·물가 정책을 재설계하지 않으면 금등어·없징어·금마늘에 치솟는 밥상물가를 되돌리는 건 영영 불가능할 수 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