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大寒) 추위가 매섭다. 소한(小寒)을 지나 입춘(立春)을 맞는 길목에 있는 대한은 한 해 중 가장 추운 절기다. 이런 때는 건강을 위해 몸을 따뜻하게 관리해야 한다. 음식도 과메기와 꼬막, 귤 등 제철 음식들을 먹는 게 좋다. 절기를 무시하고 옷을 얇게 입거나 난방을 꺼버린다면 몸에 탈이 날 수 있다. 대한 추위가 싫다고 겨울을 여름으로 뒤바꾸는 건 당연히 가능하지 않다.
사람은 자연의 변화를 제대로 알고 맞춰 살아가야 탈이 없다. 예로부터 농사를 업으로 삼았던 우리 선조들도 늘 절기의 변화를 살폈다. 곡우(穀雨) 때는 강수량을 보고 한 해 농사를 가늠했다. 하지(夏至)가 되면 논에 물대기에 모든 정성을 쏟았다. 농사꾼은 모름지기 절기의 변화를 알고 순응해야 한 해 농사를 망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절기에 무지한 이들은 ‘절부지(節不知)’로 불렸고 요즘 쓰는 ‘철부지’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 직접 출석해 “저는 철들고 난 이후…자유민주주의라는 신념 하나를 확고히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라며 탄핵소추 사유들을 부정했다. 그러나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에 군 병력을 보내 입법부 기능을 마비시키려 했던 것은 철부지 정치의 극치였다.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을 투입한 것도 어이없다. 계엄 후에는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국민 앞에 다짐하고도 수사, 체포, 구속, 탄핵 심판 과정에서 지연·회피로 일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금 뭘 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는 듯하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 혐의’를 뺀 데서는 조기 대선을 앞당기려는 조급증이 드러났다. ‘카카오톡 등을 통해 가짜뉴스를 퍼나르는 일반인도 내란 선동으로 고발할 것’이라는 민주당의 발표는 거센 반감을 일으켰다. 대통령·국무총리·감사원장·장관·검사 등에 대한 무차별적 탄핵과 내란 특검에 ‘외환죄’를 넣었다 뺐다 한 행태는 ‘이재명 1인 체제의 민주당이 집권하는 게 두렵다’는 걱정을 키웠다. 이에 따라 계엄 직후 국민의힘보다 20%포인트 넘게 앞섰던 민주당의 정당 지지도가 다시 국민의힘에 역전되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속출했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을 일관되게 감싼 결과 당 지지율이 급반등했다는 대단한 착각에 빠져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의힘에는 집권당으로서 위헌적 계엄 선포를 미리 막지 못한 책임이 크다. 국민에게 깊이 사죄하고 다시는 유사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할 것이라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마땅한 도리다. 그렇지만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 및 탄핵 심판 절차를 방해하는 듯한 행태를 반복하고 윤 대통령 체포 저지 행동단을 자임하는 ‘백골단’을 국회 기자회견장에 끌어들이는 일도 벌였다. 급기야 당 일각에서는 서울서부지방법원 난입 폭력을 두둔하는 목소리까지 터져나오고 있다. 이런 식으로 헌정 질서 회복이라는 본분을 계속 외면하다가는 국민의힘도 ‘철부지 대통령’과 함께 몰락할 수 있다.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새해 들어 항암 치료를 중단하고 임종을 준비하고 있는 소식이 들린다. 재임 시절 ‘세계에서 가장 청빈한 대통령’으로 불렸던 그는 “민주주의의 기초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작별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에게도 다름을 존중하는 정치가 절실하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계엄령 선포부터 체포에 이르는 과정은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과 취약성을 동시에 드러냈다”면서 “시간(조속한 수습)은 정치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계엄·탄핵으로 인한 정치·경제 혼란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는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국가 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을 경고했다. 여야는 위헌적 계엄이 초래한 정치·경제 불확실성을 속히 해소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민주주의 정당은 주권자인 국민이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와 같다. 민심을 거스르면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거센 파도에 난파될 수밖에 없다. 미국 대통령을 지낸 어느 정치인이 말했듯이 민주주의는 정지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는 행진이다. 우리 민주주의도 이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이제 곧 대한이 지나면 봄의 길목 입춘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