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부터 우주까지…보이지 않는 데이터의 세계가 펼쳐진다

2025-07-10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광경은 어두운 천장을 가로지르며 빠르게 흐르는 빛의 물결이다. 흐르는 빛의 정체는 숫자와 알파벳으로 이뤄진 무수한 데이터의 파편. 인간의 DNA 정보를 기하학적 패턴으로 변환했다는데 쉬지 않고 속도를 내는 데이터의 흐름을 홀린듯 바라만볼뿐 도무지 따라잡기 어렵다. 입구를 지나 공간의 끝자락까지 나아가면 40m 길이의 거대한 벽 위로 펼쳐진 세 개의 대형 스크린을 마주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등에서 수집된 우주 관측 자료와 인간의 유전자 정보에서 추출한 과학 데이터를 20년에 걸쳐 시각화한 작가의 대표작 ‘데이터 벌스(data-verse)’ 3부작이다. 작품은 미세한 인체 세포부터 광대한 우주에 이르는 압도적인 정보량을 화면 위로 끝없이 흘려보낸다. 귀를 자극하는 고주파 사운드가 규칙적으로 흐르는 이 암흑의 공간은 우주를 아우르는 데이터를 홍수처럼 쏟아부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의 세계를 온몸으로 감각하게끔 이끈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세계적인 사운드 아티스트 료지 이케다(57)와의 특별한 재회를 준비했다. 10일부터 12월 28일까지 ACC 복합전시 3·4관에서 열리는 ‘2025 ACC 포커스-료지 이케다’는 기관의 첫걸음을 함께한 작가와의 10년 여정을 돌아보는 전시다. 김상욱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은 “사운드와 오디오·비주얼 아트의 선구자인 료지 이케다는 ACC가 추구하는 융복합 실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가”라며 “2015년 ACC의 문을 열었던 작가의 신작들을 통해 10년간 구축해온 ACC의 현재를 다시 확인하는 것은 물론 기술·예술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현 시대의 방향을 함께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총 7점의 작품이 공개되는데 이중 4점이 ACC에서 최초로 선보인다. 전시의 문을 여는 빛의 물결인 ‘data.flux [n˚2]’와 ‘크리스탈 매스’가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됐다. ‘크리스탈 매스’는 가로·세로 10m의 바닥 스크린에서 돌출하는 검은 원과 번쩍이는 흰 빛이 교차하는 묘한 광경과 귀를 맴도는 전자음이 감각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스테인리스 패널과 아크릴판, 라이트박스 등 다양한 물체의 표면 위로 바코드 패턴이 빼곡히 인쇄된 ‘더 슬리핑 뷰티’ 연작과 ‘데이터 벌스’에서 파생된 ‘데이터 그램(data.gram [n˚8])’도 이번 전시를 위해 준비된 신작이다.

눈과 귀를 홀리는 작품들을 보면 작가의 의도나 해석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시 개막을 맞아 10일 한국을 찾은 작가는 “감상에 방해가 된다”며 구체적인 설명을 극구 피했다. 그는 얼굴을 대중에 공개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며 지난 30여 년간 질의응답 등을 진행한 적도 없다고 한다. 이케다는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다면 텍스트로 전했을 것”이라며 “누가 언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는 예술에 대한 해석이 나로 인해 축소될 가능성을 배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태도는 이케다의 예술 여정이 사운드 작업에서 출발한 것과도 관련 있어 보인다. 작가는 “음악 콘서트를 열 때는 그 누구도 메시지를 묻지 않고 그저 즐긴다”며 “나의 작품 역시 아카데믹한 해석보다는 순수한 음악처럼 자유롭게 즐기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다만 감상을 위한 몇 가지 힌트는 남겼는데 작업 방식이나 제목 등에 관해서다. 그는 “데이터를 매순간 변화하는 동적 데이터와 이미 존재했지만 뒤늦게 발견된 정적 데이터로 구분하는데 주로 활용하는 건 우주·입자 등의 정적 데이터”라며 “정적 데이터가 자연과 우리의 존재에 대한 미스터리를 포괄하는 철학적 개념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거대한 데이터를 어떻게 추출해서 쓸지는 직접 공부하고 배워가며 결정했다. 데이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음악을 연주하듯 작업하기까지 20년이 걸린 이유”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슬리핑 뷰티’라는 제목에 대해 “무리수나 원주율 등 무한성을 가진 데이터를 주로 활용했는데 이런 숫자들은 사실상 언제나 존재해왔지만 이 정도로 길게 기록되는 것은 내 작업이 처음일 것”이라며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눈을 뜬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12월 28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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