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싶은 당신에게…"자연엔 검정 없다"던 살보의 여행 그림들

2025-07-10

고대 유적지의 기둥이 햇살에 노랗게 빛난다. 4월 해변의 풍경은 몽글몽글 장난감 같다. 30년 전 그림이라고 하면 놀랄 젊은 감성이다. 살보(본명 살바토레 만조네ㆍ1947~2015), 시대를 역행한 몽환적 풍경화로 오늘날 니콜라스 파티, 조너선 몽크 등에 영향을 준 이탈리아 화가다. 살보 개인전 ‘살보, 여행 중(Salvo, in Viaggio)’이 서울 삼성로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아버지는 자연엔 검정이 없다 하셨어요. 그림자에도 그걸 만들어내는 물체의 색을 조금 넣었죠.”

전시장에서 만난 외동딸 노르마 만조네의 말이다. 노르마는 부친 작고 이듬해 살보의 작업실이 있던 토리노에 살보 재단(Archivo Salvo)을 설립했다. 살보의 디지털 아카이브 4000여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카탈로그 레조네(전작 도록) 제작에 나설 계획이다. 이번 전시는 살보 재단과 여는 한국 첫 살보 개인전이다.

살보는 1970년을 전후해 일상의 재료를 사용하는 미술 운동인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에 참여했다. 대리석 판에 글자를 새기는 등의 개념적 작업을 했다. 2015년 세상을 떠나곤 45년 전 ‘살보는 살아있다’고 새긴 대리석 판을 뒤집자 ‘살보는 죽었다’는 문구가 드러났다. 1973년을 기점으로 구상 회화로 회귀, 작고할 때까지 출근하듯 그렸다. “혁명적 형식의 실험 미술이 트렌드가 되어 버리자 아버지는 ‘전형적 회화를 하는 게 혁명적이지 않냐’며 화랑의 만류에도 꽃과 정물을 그렸다”고 노르마는 돌아봤다. 1972년 카셀 도큐멘타, 1976년ㆍ1988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했다.

살보 사후 재단이 기관 및 주요 갤러리 전시의 라인업을 구축하면서 이탈리아 밖에 비로소 이름을 알렸다.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니콜라스 파티와 연관되는 1990년대 후반 이후의 그림들. 2023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아침’(1994)이 높은 추정가의 세 배를 넘는 869만4000 홍콩달러(약 15억원)에 낙찰됐다.

초상화ㆍ정물화도 남겼지만 가장 잘 알려진 작업은 풍경화. 사계절의 골짜기를 표현한 ‘밸리’, 지중해 풍경을 담은 ‘메디테라네이’, 이슬람 모스크의 첨탑(미너렛) 등 건축물을 단순화한 ‘오토마니아’ 등이 대표적인 그의 풍경화 연작이다. 이번 전시에는 그중에서도 ‘여행’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나왔다. 중동ㆍ북아프리카ㆍ유럽ㆍ아시아 등지를 여행 후 돌아와 그린 1988~2015년의 유화들이다. 가족들과 함께 여행한 이탈리아의 여름 휴가지 포르테 데이 마르미를 비롯해 독일 슈투트가르트,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이집트 등의 다양한 계절을 포착한 풍경화를 볼 수 있다.

만년에 어디서 영감을 받느냐는 질문을 받자 살보는 어린 시절 담벼락에 늘어선 낮은 집들을 그린 그림을 말했다. “저는 평생 그 그림을 다시 그리려고 애썼습니다.” 노르마는 “살보 풍경화의 진정한 주제는 빛”이라며 “그림이 다양한 시간대와 계절을 품고 있는데, 색감과 농도를 중시하며 거기 있을 때 느꼈던 마법 같은 기분을 담아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대부분 자신이 직접 방문한 곳의 풍경을 그렸지만, 끝내 가보지 못한 우즈베키스탄의 도시 히바(Khiva)의 풍경도 나왔다. 가보고 싶어했던 이곳 풍경을 그는 생애 마지막 해 작은 캔버스에 그렸다. 전시는 12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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