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사고 문씨 산재조사표 보니
‘낙상 순간을 본 목격자가 없어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음.’
문혜연(34)씨가 지난해 8월 고용당국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부친 문유식씨 사망 사고 관련 산업재해조사표(사진) 내 ‘재해발생원인’에는 이 문장 한 줄이 전부였다. 부친 문씨는 같은 해 1월 서울 마포구의 한 공사현장에서 미장 작업 중 추락했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외상성 뇌손상 등으로 결국 사망했다.

딸 문씨는 부친 사고 관련 수사가 한창이던 그해 4월 산업재해조사표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받은 건 ‘재해발생원인’, ‘재해발생 당시 상황’, ‘재발방지계획’ 등이 모두 가려진 ‘깡통’ 산업재해조사표였다. 당시 고용당국 관계자는 딸 문씨에게 “수사 중인 사안이라 정보공개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넉 달 지나 검찰이 사고 공사업체 관계자 등을 업무상과실치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뒤에야 온전한 산업재해조사표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사실상 ‘사고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내용이 전부였던 것이다.
딸 문씨는 30일 통화에서 “아빠 사고 이후 수개월 동안 수사가 진행됐는데 정작 유가족에게는 제대로 사고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지 않아 너무 답답했고 사고 원인을 아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정보공개를 청구했던 것”이라며 “막상 보니 진짜 별거 없어서, ‘수사 중’이라며 가렸던 조치가 정말 장난친 것처럼 느껴져서 화가 났다”고 말했다.
실제 산재 사고가 난 업체가 영세할수록 제출한 산업재해조사표가 ‘맹탕’인 경우가 잦다고 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위험 물질, 안전 난간 미설치, 근로자 미교육 등 관련 사고 원인을 사업주 스스로 파악하고 예방 계획까지 쓰도록 하고 있다”며 “사업장마다 그 내용의 질이 다른데 사업장이 소규모일수록 노무 담당자가 없고 대표 혼자 행정 업무로 처리하다 보니 (내용이 미비한) 그런 경우가 잦다”고 설명했다. 실제 숨진 문씨가 일하던 현장도 공사금액이 50억원 미만인 소규모 사업장에 속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행 산업재해조사표 형식 자체가 맹탕 조사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재해발생원인에 대해 빈칸 하나에 사업주가 임의로 작성하도록 한 데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구체적으로 관리 부문에선 △기술 △교육 △작업관리로, 직접 원인과 관련해선 △물적 요인 △인적 요인 등으로 구분해 작성하도록 형식을 고치는 안 등이 제시된다.
이승우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온라인으로 산업재해조사표 제출이 이뤄지는 만큼 전문성이 없는 작성자라도 선택지를 제시하고 재해 유형과 요인을 택할 수 있게 개선하는 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며 “조사표 작성이 형식화된 보고로 끝나지 않고 사업장 내 사고 예방으로 이어지는 자체 조사 절차로 활용이 돼야 할 텐데 현재는 대충해도 무방할 만큼 양식이 단순하다”고 지적했다.
김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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