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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라는 글자 아래 북한군이 있다. 올가미가 걸려있고 군복을 입은 사람이 보인다. 병사는 이미 산 사람이 아니다. 러·우 전장에서 북한군은 잡힐 위험이 있으면 항복을 거부한다. 죽기를 무서워하지 않는 병사만큼 두려운 전투는 없다. 한국전쟁 막바지 고지전에서 불 뿜는 화구를 몸으로 막았다는 병사가 있다. 국가는 그것을 교본으로 죽기 살기로 싸우라고 부추긴다. 전장에서 잡히지 말고 죽으라 한다. 이미 죽어있는 사람 얼굴을 노출하고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모습도 잔인하지만, 죽음을 부추기는 국가는 하늘이 부끄럽게 잔인하다. 누구의 아들이었을 청춘의 병사는 훗날 무엇으로 기억될까.
하늘이 열린 이후 무수한 전쟁이 있었다. 병사는 전장으로 내몰리고 싸우지 않으면 죽는다. 그래서 그렇게 싸워 무엇을 얻는가. 병사가 싸워 얻는건 파괴다. 파괴를 부추긴 수령은 죽지 않는다. 어떻게 더 많은 이익을 얻을까에 관심 있다. 유럽에 있는 가자지구를 보라.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고 건물이 파괴되었는지. 그리고 아무런 일이 없은듯 터전을 잃은 사람들을 그곳에서 쫒아내려 한다. 강제 이주시키려 한다. 여기서 사람은 숫자에 불과하다. 별이 폭발하면 또 다른 별이 탄생하겠지만, 이주는 별처럼 자연질서에 따라 생긴게 아니다. 유목민이 양을 방목하려 이동한것도 아니요. 숫자에 불과한 사람 감정이나 이주에 고통은 별의 탄생처럼 자연스럽지 않다.
조선을 강점한 일본인은 조선인을 만주로 강제이주 시켰다. 그리고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만주로 갔다. 이주한 조선인들 속에 나의 부모님에 부모님도 있다. 강화위씨에 공주이씨는 따뜻한 남쪽 사람이었다. 만주로 이주한 사람들은 황무지를 개간하고 공동체를 이루었다. 연해주로 이주했던 조선인은 1937년 스탈린 지시로 우주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당했다. 이들을 ‘고려인’으로 부른다. 이주가 그렇게 좋으면 ‘집 나서면 고생’이라는 말은 어찌 생겼을까. 일본인이 흥남에 화학공장 지울 때 헐값으로 땅을 사고 농민을 강제로 내쫒으며 잘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흥남을 만든 노구치는 재벌이 되었고, 조선인 임금은 일본인 임금에 절반도 안되었다.
병사여! 이주의 슬픔이 가득한 러시아에 무슨 영광을 얻으려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가. 당신의 수령은 병사를 전장으로 보내고 안녕한가? 아직 이주에 역사를 모르거나, 군(軍)생활 경험이 없어 전장을 모른다. 그래서 무지하고 무모하다. 부모에 부모를 따라 부족함 없이 살았으니, 터전을 잃는 고통을 모른다. 경험 없는 사람이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 불안하다. 경험 없는 무지한 수령은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저질러 버린다. 수령은 당신의 죽음보다, 권력으로 얻을 영광만을 생각한다. 그러니 무모하게 죽지 마시라. 당신을 낳은 어미와 당신을 기다릴 가족을 위해서.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이’ 만주로 이주한 윤동주 시인은 연변에 있는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하늘 부끄럽게 병사는 이미 전장에서 많은 것을 파괴했다. 병사가 쏜 포탄은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고 터전을 파괴했다. ‘수령 만세’를 부르고 죽은들 당신의 영광은 수령만에 것이다. 청춘은 한번 뿐이고, 병사도 명령에 불복종할 권리가 있다. 병사는 살아서 고향으로 가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