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으로 ‘진짜 하나’…규모와 효율 동시 확보
[미디어펜=이용현 기자]국내 건설업 부진으로 시멘트 업계 전반이 고전하는 가운데 한일시멘트가 자회사 한일현대시멘트와의 합병을 통해 반전을 노린다.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합병이라는 변화를 맞아 전근식 한일시멘트 대표의 리더십에 관심이 쏠린다

1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공개된 주요 5개 시멘트사(한일시멘트·아세아시멘트·삼표시멘트·성신양회·쌍용C&E)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은 모두 전년 동기 대비 큰 폭으로 감소했다.
특히 한일시멘트는 가장 큰 감소세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1~6월) 연결기준 매출액은 작년 같은 기간(9097억 원) 대비 22% 감소한 7058억 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 역시 1625억 원에서 654억 원으로 60% 급감했다. 건설 업계 불황에 따른 시멘트 수요 위축과 원가 부담이 겹치면서 실적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이후 불황 속에서도 매년 괄목할 성과를 올렸지만, 원가 상승과 더불어 경기 침체에 이은 최악의 건설경기 불황은 올해 성적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불황 타개책으로 합병을 내세운 만큼 CEO의 리더십이 업계 내 관심사로 주목받고 있다.
◆‘현장 경험부터 CEO까지’ 한일시멘트의 컨트롤타워
1991년 한일시멘트 평사원으로 입사한 전근식 대표는 이후 생산·기획·재무·경영 등 전 부문을 거치며 단양공장 부공장장, 경영기획실장, 재경본부장을 역임했다. 2012년 한일네트웍스 대표이사로 CEO 커리어를 시작하며 ‘현장과 경영’을 모두 아우른 경험을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리더십이 본격적으로 각인된 순간은 2017년 현대시멘트 인수였다. 당시 실무 총괄을 맡아 성사시킨 거래는 업계 판도를 바꾼 빅딜로 한일시멘트의 시장 점유율을 기존 11%대에서 20%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단숨에 업계 2위 자리에 올려놨다.
이듬해에는 한일그룹의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도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조직 재편을 이끌었다. 이후 한일홀딩스와 한일시멘트·한일현대시멘트 대표를 동시에 맡아 그룹 전반을 총괄하는 등 업계에서는 그가 한일시멘트의 ‘컨트롤타워’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전 대표가 최근 내린 또 하나의 결단은 한일현대시멘트와의 합병이다. 지난 7월 한일시멘트 측은 규모의 경제와 경영 효율화 달성을 이유로 해당 계획을 발표했다. 앞서 두 회사는 CEO와 임원을 공유하며 사실상 하나의 조직처럼 움직였지만 법적 분리로 실적과 평가가 분산되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오는 11월1일 합병이 완료되면 한일시멘트는 연매출 1조7000억 원, 시장 점유율 21.76%로 업계 1위 자리에 오른다. 단순히 ‘덩치 키우기’에 그치는 합병이 아니다. 전근식 대표의 구상은 양사에 흩어져 있던 생산·물류·영업 라인을 통합해 중복 투자를 걷어내고, 절감된 비용을 미래 투자 여력으로 돌리는 데 있다.
합병으로 재무 안정성도 강화된다. 공시에 따르면 한일현대시멘트의 부채비율은 107%, 한일시멘트는 39%였으나 합병 후 조정된 비율은 53% 수준으로 외형상 신용도 개선 효과 역시 기대할 수 있다.
환경설비 투자가 일단락된 것도 호재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일시멘트에서 매년 500억~1000억 원 수준으로 발생하던 대규모 CAPEX 집행 부담이 감가상각비로 전환됐다”며 “이는 실제 현금 유출 압력도 크게 줄어들 뿐 아니라 이는 차입금 상환 속도를 높이고 자금 조달 금리를 낮추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합병 후 미래 준비도 '꼼꼼'
전근식 대표는 이번 합병뿐 아니라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술·환경 투자도 병행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경기 부천 레미콘 공장이다. 이곳은 현재 AI 기반 자율형 공장으로 재탄생 중이다. 공장 내부를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로 가상화해 AI가 센서 데이터를 분석하며 생산계획을 스스로 조정하고 문제를 사전에 감지한다.
부천 공장은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의 자율형 공장 구축 지원사업에 최종 선정돼 총 사업비 12억 원 중 50%에 해당하는 6억 원을 국비로 지원받아 구축 중이다.
기술 투자와 함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전 대표는 한일시멘트 ESG경영추진위원장으로서 총 2710억 원을 투입해 순환자원 연료 확대, 폐열 발전, 비탄산염 원료 도입 등 친환경 설비를 구축 중이다. 장기 목표로 2030년까지 탄소 배출 30% 감축, 2050년에는 넷제로(Net Zero) 달성을 설정했다.
전 대표의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나 환경 대응을 넘어, 불황기에도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적 행보로 평가된다.
다만 시멘트 업계는 여전히 건설 경기 부진이라는 큰 파도에 흔들리고 있다. 올해 1분기 국내 시멘트 출하량은 812만 톤으로 IMF(886만 톤)와 2008년 금융위기(986만 톤) 때보다 낮았다. 재고자산도 증가하고 있으며 재고자산회전율은 한일시멘트 7.51회, 한일현대시멘트 5.61회로 둔화돼 현금화 속도가 떨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일시멘트뿐 아니라 시멘트 업계 전반에서 현재로서는 출하량 증가 외에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며 “회사 차원에서 가능한 원가 절감과 효율화 노력을 지속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합병으로 규모와 재무 안정성을 확보하더라도 그룹 성장 기반 마련은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로 남는다. 전 대표는 에코 발전과 대체 연료 활용 등으로 원가 절감 노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소성로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전력 생산에 활용하고 유연탄 대신 폐플라스틱·합성수지 등 순환 자원을 연료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실제 한일시멘트는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에코발전 설비를 운영하고 있으며 순환자원을 완전 연소시키는 ‘파이로로터’ 설비까지 갖춰 효율성을 높였다.
업계에서는 이번 합병을 계기로 전근식 대표가 기술·환경 투자를 적극 활용해 단기적인 재무 안정뿐 아니라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까지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합병과 효율화, 친환경 설비 구축을 연계한 전 대표의 전략이 불황 속에서도 한일시멘트의 성장 기반을 다지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