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라질 정부가 예상보다 빠르게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종식 선언을 하면서 우리 정부가 지역화 카드를 성급하게 내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역화는 브라질 내 고병원성 AI 비발생 지역에서 생산한 닭고기는 수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더욱이 새 정부가 물가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면서 브라질산 닭고기 수입 재개 절차를 더욱 신속히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소비자 여론에 떠밀려 중요 정책을 성급히 결정한 사이 국내 닭고기 생산업계만 내상을 입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브라질, WOAH 요건에 따라 자체 청정국 선포=브라질 정부는 18일(현지시각) 세계동물보건기구(WOAH)에 고병원성 AI 자체 청정국임을 선언했다. 이어 자국산 닭고기 수입을 중단했던 국가들에 이 상황을 통보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26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브라질 정부의 요청으로 브라질산 닭고기의 전면 수입 재개 절차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WOAH에 따르면 고병원성 AI 자체 청정국이 되려면 ▲최종 발생농장의 살처분·소독을 완료한 뒤 28일간 추가 발생이 없고 ▲같은 기간 바이러스가 순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해당 국가가 예찰자료 등으로 입증해야 한다. 브라질 정부는 5월16일 히우그란지두술주 소재 가금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이후 살처분·소독을 마쳤다. 이어 5월22일∼6월18일 28일간 추가 발생사례가 없었다고 보고했다.
◆“검역협상 무기인 지역화 카드만 아깝게 내줬다”=앞서 우리 정부는 10일 수입위생조건 제·개정안을 행정예고하면서 브라질 내 고병원성 AI 비발생 지역에서 생산된 닭고기는 수입을 허용하는 지역화 조치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닭고기 수급이 불안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브라질 정부의 종식 선언에 따라 농식품부가 브라질산 닭고기에 대한 안전성 평가를 마치면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히우그란지두술주에서 생산된 닭고기까지도 국내에 들어올 수 있게 된다. 만일 우리 정부가 지역화를 허용하지 않았다면 브라질산 닭고기 수입 재개는 이번 평가 결과 이후 결정된다.
브라질의 AI 발생 상황이 정리되면 브라질산 닭고기 수입 재개가 절차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는 상황에서 성급한 지역화 결정으로 향후 브라질 내 AI 발생 때 닭고기 반입을 제한할 명분을 내줬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생산자단체 관계자는 “브라질 내 고병원성 AI가 재발하지 않아 발생지역의 닭고기까지 수입이 곧 가능해지는 것을 보니 정부가 국내 생산자단체의 강력한 반대에도 지역화를 밀어붙인 점이 아쉽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농식품부가 가축 사육농가보다 소비자 여론을 더 중시한다는 느낌을 받아 허탈했다”고 덧붙였다.
◆물가 잡겠다는 새 정부 기조…닭고기 수입 빨라질까 우려도=브라질산 닭고기 중 지역화 적용 물량은 서류상으로는 21일부터 국내 반입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운송시간을 고려하면 8월 중순 이후 국내에 선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계약·선적에 1주일, 해상운송에 45일가량 소요돼 물리적인 시간을 앞당기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브라질 측의 고병원성 AI 자체 청정국 선언에 따라 발생지역의 닭고기는 그 이후 국내에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아직 브라질 정부에서 안전성을 입증하는 증빙자료가 도착하지 않았고, 자료가 미흡하면 보완 요청을 할 수도 있기에 정확한 재개 시점을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물가 위주의 수급정책을 펴는 새 정부 기조도 국내 닭고기 생산업계로선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밥상물가 잡기에 주력하고 있어 절차를 서두를 가능성이 크다”며 “농식품부가 10일 수입위생조건 제·개정안을 행정예고하면서 통상 30일 걸리는 기간을 10일로 단축한 것만 봐도 그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식품·유통업계는 브라질산 닭고기 수입 전면 재개를 발 빠르게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브라질 내 고병원성 AI 발생 직후 국산 닭고기 제품의 안전성과 희소성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수입 재개가 예상보다 빨라 전략을 수정 중”이라고 귀띔했다.
이미쁨 기자 already@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