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자도 부모 모두에게 사랑받을 권리 있다”

2024-12-20

“양육비나 상속권 같은 돈 얘기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들이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는 것 아닐까요.”

오는 25일 개봉하는 영화 ‘면접교섭’의 이주아(26) 감독은 자신의 데뷔작을 소개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최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배우 정우성씨의 혼외자 사례처럼 우리 사회에 미혼 부모가 급격히 늘고 있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부모 모두로부터 사랑받을 권리’엔 여전히 둔감하다는 지적이다.

청년 세대의 시각에서 전통적인 가정의 형태가 무너지는 사회상에 고민하던 그는 특히 미혼 부모와 자녀의 면접교섭권에 주목했고 한국영상대 재학 시절 이를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제작된 ‘면접교섭’은 미혼부 아버지가 아이와 만나기 위한 여정을 담은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로, 지난해 각종 창작 지원 사업 대상에 선정된 데 이어 지난 2월엔 칸 영화제에도 출품되는 등 국내외 평단의 호평 속에 스크린을 통해 일반 관객들과도 만날 수 있게 됐다. 감독 데뷔를 앞둔 그를 만나 MZ세대 감독이 바라본 한국 사회의 저출생 문제와 혼외자 논란 등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영화 제목이 특이하다.

“처음에 붙였던 제목은 ‘아버지로 살고 싶다’였다. 수년 전부터 미혼 부모의 급증 현상에 관심이 컸다. 그러던 중 문득 미혼모가 주인공인 영화는 많은 반면 미혼부를 다룬 영화는 드물다는 걸 알게 됐다. 이에 미혼부에 초점을 맞춘 영화를 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그 과정에서 미혼 부모 못지않게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후 영화의 중심을 아이들로 옮기면서 제목도 바꿨다.”

면접교섭권은 부모의 권리 아닌가.

“부모와 아이 모두의 권리다. 특히 미혼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에겐 그 무엇보다 소중한 권리다. 부모가 결혼하지 않은 탓에 태어나면서부터 한쪽 부모에 의해 선택된 아이들은 어머니나 아버지와 떨어진 채 성장해야만 한다. 하지만 자녀는 부모 모두와 만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게 기본 권리이지 않겠나. 면접교섭권도 이런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미혼 부모의 면접교섭이 쉽지 않을 텐데.

“우선 친자 관계 확인부터 쉽지 않다. 영화의 주인공도 그런 사례로, 유전자 검사부터 시작해 소송까지 진행해야 했다. 영화 제작을 위해 조사하다 보니 미혼 부모의 아이 중엔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미혼모가 출생 기록을 남기길 꺼리기도 했고 상대방이 동의해 주지 않아 출생신고를 못하기도 했다. 출산율은 갈수록 낮아지는데 혼외자는 증가하는 현실 속에서 이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감독의 지적처럼 국내 출생자 수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감소하는 데 비해 미혼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출생아 23만28명 중 4.7%인 1만900명이 부모가 혼인하지 않은 ‘비혼 출생아’였다. 2018년 2.2%에 비해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미혼 부모도 2022년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 2만6021명으로 집계됐는데, 전문가들은 미혼 부모의 경우 출산을 하더라도 자녀를 호적에 올리지 않는 사례가 적잖은 만큼 실제로는 3만 명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우성씨 사례 이후 혼외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는 건 긍정적이지만 양육비나 상속권 등에 초점이 집중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정작 돈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온전히 사랑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건데 그에 대한 고민과 건설적인 토론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혼외자 명칭에도 논란이 있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유럽 사례를 알아보려고 현지인들에게 미혼 부모를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다들 의아해했다. 유럽에선 미혼 부모가 흔하고 그들의 자녀도 많아 ‘혼외자’라는 단어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일상에서 부모의 혼인 여부로 아이를 구분하는 일도 전혀 없다고 하더라. 시간이 지나면 우리 사회에서도 자연스레 정리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그는 “혼외자 명칭보다 더 중요한 게 따로 있다”며 ‘사랑받을 권리’를 거듭 강조했다. “혼외자가 많은 유럽이나 미국에선 아이가 부모 모두에게 사랑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사회적 관심이 집중돼 있다. 유럽에선 부모의 공동 양육권이 기본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국내에선 대부분 부모 한쪽이 양육권을 갖게 되다 보니 엄마 아빠 중 한 명과는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며 성장하는 아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혼외자 아이들도 똑같이 사랑받고 자랄 권리가 있지 않겠나. 더 늦기 전에 보다 진지한 사회적 논의와 관심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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