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의 첫 조직개편안이 지난 주말 발표됐다. 검찰청 폐지, 기획재정부 분리, 금융위원회 개편 등 여러 굵직한 개편이 담겼지만, 데이터 사이언스를 전공한 필자의 눈길을 끈 건 '통계청의 국가데이터처 승격'이었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국가 차원의 체계적 데이터 정책 수립과 이를 위한 전담부처의 필요성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승격은 현재 기획재정부 산하에 있는 통계청을 국무총리실 소속 국가데이터처로 독립시킨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통계청은 1961년 경제기획원 통계국으로 출범한 후, 지난 60여년간 줄곧 경제부처 산하에 있었다. 이는 과거 통계청이 주로 경기, 소득, 물가 등 경제통계를 생산하는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인해 데이터의 역할은 과거 경제통계가 다뤘던 범위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학습 데이터는 AI 알고리즘 고도화를 위한 핵심 자산으로 부상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피지컬 AI 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산업별 AI 대전환(AX:AI Transformation)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양질의 데이터 확보와 활용이 중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승격은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체계적 데이터 정책 수립보다는, 경제부처로부터 통계의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우선된 것으로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 정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번 개편에는 조직 명칭과 소속 변경만 포함돼 있으며, 업무 범위 조정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국가데이터처의 위상이 기획재정부 산하 '청(廳)'에서 국무총리실 소속 '처(處)'로 격상되었지만, 실제 업무 범위에는 큰 변화가 없다. 이름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전통적인 경제·사회 통계 생산에 국한된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이번 국가데이터처 승격은 이명박 정부 시절 이슈가 되었던 지니 계수 조작 논란이나, 문재인 정부 시절 가계동향조사 결과로 청장이 경질되면서 통계청이 정치적 외압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고, 이러한 정치적 중립성 요구에 대한 반영에 가깝다는 해석이 많다.
국가데이터처가 명칭에 부합되는 업무를 수행하고, 국가 차원의 효율적 데이터 정책 수립과 관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이는 국가데이터와 관련한 많은 업무가 여러 부처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국가데이터를 위한 핵심 업무인 공공데이터 정책 수립과 분석, 관리 업무는 행정안전부가 담당하고 있다. 공공데이터 포털을 운영하고, 정부 부처의 데이터를 개방·표준화하며, 지방자치단체의 데이터 관리를 지원하는 업무 또한 행정안전부의 역할이다. 한편 학습용 데이터 구축, 데이터 결합전문기관 지정, 데이터 연구개발(R&D)을 비롯한 데이터산업 진흥 업무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이다. 데이터 활용 촉진과 데이터 인프라 정책, 개인정보 비식별화 업무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맡고 있다.
가명정보 활용 규제, 데이터 결합 심의, 개인정보보호와 데이터 활용 간 균형 조정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몫이다. 마이데이터 관련 정책 수립과 서비스 혁신, 인프라 표준화 역시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소관이다. 여기에 금융 마이데이터는 기존 금융위원회, 헬스케어 마이데이터는 보건복지부 등이 나눠서 역할을 맡고 있다. 지도 데이터, 교통 데이터 관련 업무는 국토교통부가 담당한다. 산업 데이터 활용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역할이다. 이처럼 데이터 정책의 소관은 여러 부처로 분산되어 있다.
이는 각 부처의 역할 수행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아니다. 국가 차원의 효율적인 데이터 정책 수립과 관리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 구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여러 부처에서 수립, 집행하는 사업 간 중복과 이해관계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통합적 조정기구가 필요하다.
현재 데이터 정책은 행정안전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금융위원회,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여러 부처에 분산되어 있다. 이러한 파편화된 구조로는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데이터 인프라를 제대로 마련하기 어렵다.
국가데이터처는 국가 데이터 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총괄하고, 데이터 산업을 통해 대한민국이 AI 3대 강국으로 발돋움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국가데이터처가 명칭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부조직 개편의 후속 조치가 요구된다.
데이터는 곧 국가의 힘이고, AI는 그 힘을 실행하는 무기다. 데이터 정책의 체계화는 AI 경쟁력뿐 아니라 국가 안보와 산업 전략의 기반이 된다. 이제는 분야별 데이터 정책의 키를 쥐고 있는 여러 부처가 조금씩 양보해 국가 차원의 일관된 데이터 정책 수립에 힘을 모아야 한다.
황보현우 서울대 산업공학과 객원교수 scotthwangbo@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