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제작사 ‘에이콤’의 창립자이자 예술감독인 윤호진(77)은 소설가 이문열·김훈과 1948년생 동갑내기다. 젊은 날부터 종종 술을 마시며 함께 어울렸다. 이들의 작품을 각각 뮤지컬로 바꾸는 작업도 했거나 하고 있다. 이문열의 희곡 ‘여우사냥’을 확장한 게 ‘명성황후’이고, 김훈의 밀리언셀러 ‘칼의 노래’는 제작하고 있다. 또 다른 역사 뮤지컬 ‘영웅’과 함께 그가 ‘항일 3부작’이라고 부르는 에이콤의 IP(지적재산권) 3대장(이 될 전망)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3부작을 기획한 건 아니다. ‘영웅’의 경우엔 2004년 어느 날 사무실로 찾아온 낯선 사내의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자신을 ‘안중근기념사업회 문화국장 김곤’이라고 소개한 그는 다짜고짜 “5년 후가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기인데, 작품을 하나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제작비를 대겠다는 제안도 아니었다. 당시 윤 감독은 ‘명성황후’ 10주년 공연 준비에 매진하고 있어 귀담아들을 입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내는 일주일 뒤 다시 찾아와 또 한번 압박했다. “안중근 의사 이야기가 ‘명성황후’ 후속편인 셈인데 왜 안 하려고 하십니까?”
이게 뭔 얘기인가 했죠. 명성황후 시해(을미사변)는 1895년이고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은 1909년인데 둘이 무슨 상관이란 건지. 그런데 안중근이 법정에서 명성황후 시해를 의거의 첫 번째 이유로 들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자료를 찾고 북한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봤는데, 점점 안중근이란 인물이 세종대왕·이순신급으로 위대해 보여요. 대본 작가와 2년 씨름해서 지금의 얼개를 뽑았죠.
(기자에게) 혹시 포커 쳐봤어요? 포커에서 제일 좋은 패가 로열 플러시(Royal Flush)예요. 같은 모양·색깔의 에이스(A)부터 텐(10)까지 한번에 받는. 일생에 한 번 받을까 말까 한 패죠. 근데 ‘영웅’은 만들면 만들수록 ‘이건 로열 플러시’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내 머리와 경험이 ‘명성황후’ 때보다 훨씬 발달했으니. 그래서 투자받는 것도 거절했잖아요. 이건 100% 내가 뽑아먹을 수 있겠다 싶어서.

그런데 그가 맨 처음 빠진 뮤지컬은 1982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본 ‘캣츠’다. 브로드웨이에선 ‘위키드’를 보고서 감탄했다. 20대 초반에 실험극단에 입단해 ‘아일랜드’ ‘에쿠우스’ 등 실험적·사회적인 연극에 매료됐던 그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당시 한국에선 실험극단에서 독립해 나간 현대극단의 ‘빠담빠담빠담’ ‘에비타’ 같은 작품이 화제였지만 윤호진은 동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론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캣츠’ ‘위키드’ 같은 게 진짜 뮤지컬이라면 이런 건 해볼 만하다,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아쉬운 소리 하며 연극 후원금 받으러 다니는데 질렸다. 극장에서 제 돈 내고 뮤지컬 보는 관객에게서 답을 보았다. 다만 그가 끌리는 건 ‘비극적 서사’였다.
그때 누군가 책을 권했다. 일본 작가 쓰노다 후사코가 쓴 『민비 암살』. 일본 낭인들이 민비를 시해했다는 내용이 실린 첫 책이다. 머릿속에서 아이디어 엔진이 빠르게 돌아갔다. ‘에비타’(술집 여종업원에서 훗날 아르헨티나 영부인이 된 에바 페론을 소재로 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못지않은 소재인데? 극동의 작은 나라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시기에 ‘비운의 왕비’ 이야기로 그려내면-. 명성황후 시해 100년이 되는 1995년에 막을 올리면 가능성이 있겠다!
문제는 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