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철학] 풀을 이기는 법(3)

2024-12-19

겨울입니다. 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낮 기온조차도 한자리의 영상 기온을 보이면 매우 춥고, 이런 날들이 계속 이어지면 겨울입니다. 가을에 이어 왔듯 봄이 다가오면 물러날 겨울입니다. 이런 겨울에 우리 부부가 느끼는 첫 감상은 ‘훤하다’입니다. 들과 산에 거칠 것 적어 시야가 훤히 뚫립니다. 매년 겪으면서도 이런 훤함은 문득 다가섭니다. 이곳저곳에 수북하던 낙엽도 잦은 바람에 다 쓸려 어디로 가버려 휑뎅그렁하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감성이 풍부한(?) 저는 일말의 서글픔과 착잡함에 잠시 취하기도 합니다만, 아내는 매우 실용적인 성품이어서 다 못한 밭 정리에 자책하다가 급기야 저를 질책하는 것으로 감상을 대신합니다. 시도 때도 없이 다투는 부부입니다만, 엊그제 내린 눈에 희끗희끗한 밭 가장자리를 보노라면 이런 다툼이 길게, 길게 이어지라고 엉뚱한 기구를 하게도 되는 겨울입니다. 아무튼 질기고 억센 풀마저 명을 다하거나 납작 엎드렸으니 시원하기도 해서 풀 이야기를 마저 해야겠습니다.

생태적 농업과 농업, 그리고 풀

우리나라의 생태적 농업은 친환경농업의 가장 먼 곳까지 나아가는 첨병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태적’이라는 말은 ‘생태주의적’이기도 하고 ‘농생태학적’이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그렇습니다. 저는 ‘농생태학적’이라는 의미를 담은 생태적 농업이라는 말로 쓰겠습니다. 농생태학은 농업 시스템을 매우 복잡하고 복합적인 것으로 보며, 생태적 상호작용을 활용하여 지속 가능하고 회복력 있는 농업에 이르려고 합니다. 농생태학의 통합잡초관리는 잡초 제거가 생태계의 동적 균형과 무관하지 않다는 성찰에서 출발합니다, 무경운은 이의 구현을 위한 핵심 전략인 것입니다.

우리의 생태적 농업 또한 무경운이 핵심 가치입니다. 핵심 전략이 아니고 핵심 가치라고 말하는 것은 무경운 농법에서 반드시, 그리고 심층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잡초 관리인데 방법론이 노동력에 의존하는 단순한 해법에 기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무경운이 여러 장점 중 탄소 배출을 급감할 수 있다는 것은 오해에 가깝습니다. 무경운 농법이 토양 표층에 탄소를 축적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밭갈이할 경우 더 깊은 토양층에 탄소를 축적시켜 전체적인 탄소 저장량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 연구가 많습니다. 물론, 탄소 배출만 놓고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또 질소 배출( N₂O, 아산화질소)에서도 밭갈이에 견주어 그리 큰 효과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N₂O는 지구 온난화 지수(GWP)가 CO₂보다 약 298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무경운이 무조건 환경 친화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생태적 농법에는 다양한 갈래가 있습니다만, 대체로 자연 생태계와 비슷한 형태로 농사를 짓는 방식을 말합니다. 자연 생태계에 의존하면서 생산을 도모한다는 것이죠. 제 생각에 이러한 가치 중심적 농법은 먼저 농사짓는 이의 목적에 의해 합리화됩니다. 자연 친화적 삶을 교육하거나 그런 삶의 영위를 명상적으로 추구한다면 매우 적합한 방식입니다. 그러나 생산성과 경제성을 견지하면서 소득 구조를 형성하자면 무척 고단한 농법입니다. 아니, 수용 불가한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요즘 횡행하는 약탈과 고갈로 직진하는 일반 농법이 불가피하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다만, 농경지를 농업생태계로 이해하고 생태학적 원리를 기반으로 농생태학적 전환을 이루려는 농생태학의 생태적 농업은 생산성과 경제성을 핵심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이를 농생태학적 전환이라고 부릅니다.

무경운과 통합잡초관리

무경운은 기술이 아니라 토양 생태계와 농업 시스템 전체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농업의 전략입니다. 목표는 당연히 지속 가능하고 생산성 높은 농업입니다. 무경운에서 효과적인 잡초 관리는 다양한 방법을 통합하고, 각 지역의 특수성과 작물의 특성에 맞춰 진행되어야 합니다.

경운농법에서 하던 기계적 제초나 화학적 제초는 무경운에서 효율이 떨어지거나 환경 악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토양 표면의 잔재물은 기계적 제초를 어렵게 하고, 제초제를 쓰더라도 효과가 떨어집니다. 무경운 환경에서는 특정 잡초가 우점 현상을 보일 수 있으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잡초가 골칫거리로 등장할 수 있습니다. 잡초 종의 조성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경운에서는 작물과 잡초의 경쟁이 더욱 심화됩니다. 작물의 초기 생장이 느리거나 경쟁력이 약하면 잡초에 밀려 수량 감소로 이어집니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최선은 1) 잡초와의 경쟁력이 높은 작물을 선택하고, 2) 적절한 작물 순환 체계를 통해 잡초 밀도를 감소시켜야 합니다. 밀집도가 높은 작물을 재배하여 잡초의 햇빛 접근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작물을 번갈아 심어 토양 내 잡초 씨앗을 감소시키는 작부체계를 설계해야 합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돌려짓기, 사이짓기, 섞어짓기 등입니다. 특히, 밭이 비게 되는 겨울철에는 겨울나기 작물을 반드시 심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이러한 작부체계가 잡초를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합니다만 장기적인 잡초 감소는 보증하는 방식입니다. 더구나 이와 같은 순환체계가 자리 잡으면 토양 환경이 좋아질 뿐 아니라 토양 유기물의 증가로 무기물 저장 효과가 높아져 양분 공급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도 뒤따르게 됩니다.

무경운과 생산성

경운 농법을 비교한 무경운의 작물 수확량을 평가한 연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작물 종류가 무경운 농법의 수확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다음으로 건조도, 잔류물 관리, 무경운 기간, 질소 비료 사용량 순으로 수확량의 과다가 결정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채, 목화, 콩과 작물 등은 무경운 농법이 기존 경운 방식과 비슷한 수확량을 보였습니다. 밀은 수확량에서 무경운 농법의 부정적 영향이 가장 적었지만, 쌀과 옥수수에서는 가장 큰 수확량 감소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건조한 기후의 강우 조건에서 가장 효과적이어서 기존 경운 방식과 같거나 더 나은 수확량을 보였습니다.

무경운 농법은 도입 후 1~2년 동안은 작물의 수확량이 감소했지만, 3~10년 후에는 기존 경운 방식과 비슷해졌습니다. 습윤한 기후에서는 옥수수와 밀은 수확량 회복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려 1~2년 동안 유채와 면화를 제외한 모든 작물의 수확량이 감소했지만, 3~10년 후에는 기존 경운과 비슷해졌습니다.

이를 줄여 말하면 무경운 농법은 철저히 시스템적 접근을 하지 않으면 10여 년의 수확량 급감마저도 감수해야 하는 장기적 과제임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식으로든 전략적 접근을 하게 되면, 이듬해부터도 적정 수확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일반 농법에 견줄 수 없는 막대한 실질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셈입니다.

무경운의 전략적 접근을 위한 핵심 요인은 토양 유형, 기후 조건, 작물 종류, 관리 방식(비료, 잔류물 관리 등)이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건조한 지역에서는 무경운 농법이 수분 보존에 도움이 되지만, 습한 지역에서는 수분 과잉이나 작물 정착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환경과 풍토를 깊이 고려하여 모든 실천 사항을 정립해야만 합니다.

무경운 농법은 특정 조건에서 유용한 농업 방식이지만, 광범위하게 일반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일종의 표준 레시피를 작성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뒤따릅니다. 농생태학적으로도 토양 탄소 저장 및 N₂O 배출량에 대한 농업 방식의 장기적인 영향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특히 깊은 토양층의 데이터 수집이 필요하며, 미생물 활동 및 토양 역학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이근우 시민,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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