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지나 열흘이면 해가 노루꼬리만큼씩 길어진다.’
동지(冬至)가 지나면 밤이 짧아지고 낮이 조금씩 길어진다는 뜻을 담은 속담이다. 오늘날 동지는 ‘팥죽 먹는 날’ 정도로 생각하지만 옛날엔 설에 버금가는 중요한 절기였다.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과 과장은 “동지는 1년 가운데 밤이 가장 길고 낮은 가장 짧은 날인데, 다시 말하면 동지를 기점으로 낮이 다시 길어진다”며 “옛날엔 새해가 시작된다는 의미로 ‘작은 설’ 또는 ‘아세(亞歲)’로 불렀다”고 설명했다. 동지는 설 다음으로 경사스러운 날인 만큼 다양한 풍습이 전해온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지와 팥죽=동지 하면 가장 먼저 팥죽이 떠오른다. 지역마다 찹쌀이나 수수쌀로 새알을 만들어 뭉근하게 끓인 팥죽에 나이대로 넣어 먹었는데, 이는 동지 때 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동지첨지’ 풍습에서 비롯된다. 동지 땐 왜 하필 팥죽을 먹을까? 조상들은 밤이 가장 긴 날은 음의 기운이 강해 귀신이 든다고 여겼다. 이때 붉은 팥은 양기를 상징하며 잡귀를 쫒는 벽사의 힘이 있다고 믿어 팥죽·팥시루떡 등 붉은 팥 음식으로 음기를 떨친 것이다.
혹여라도 귀신이 이때를 틈탈까 하는 마음에 팥죽을 쒀 고사도 지냈다. 이를 ‘동지고사’라 하며 지역마다 동지차례·팥죽고사·팥죽제 등으로 불렀다. 동지고사는 팥죽을 그릇에 담아 장독대·부엌·헛간·우물·대문 옆 등에 놓은 다음 남은 팥죽을 들고 집 안을 돌아다니며 숟가락이나 솔가지로 팥죽을 떠 담벼락과 문짝에 뿌린 후 액운을 없애는 일이다. 정 과장은 “옛 농경사회 모습이 동지 풍습에 그대로 녹아 있다”며 “동짓날 쑤는 팥죽엔 일반 팥죽과 달리 귀한 쌀을 함께 넣어 만들고, 1∼12월을 상징하는 12개 그릇에 팥죽을 나눠 담은 뒤 식으면서 나타나는 갈라짐을 보고 날씨점을 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겨울 대비 새해맞이, 동지 풍습=‘하지엔 부채, 동지엔 새해 책력(하선동력·夏扇冬曆)’이란 옛말이 있다. 실제로 궁중에선 동짓날 달력을 나눴다. ‘동지책력’은 밤보다 낮이 더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짓날 궁중에선 책력을 만들어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했고, 신하는 이를 친지에게 나눠주는 풍습을 뜻한다. 책력은 조선시대 천문지리 등을 살피던 관서에서 만든 달력으로, 농경사회에서 중요한 절기가 표시돼 있다.
설날에 새 옷을 정성스레 준비하듯 동지엔 한땀 한땀 버선을 지었다. 본격적으로 추워지는 날씨에 대비해 집안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버선을 지어드리는 ‘동지헌말’ 풍습이다. 동지는 음기가 다하고 양기가 커지기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에 버선이 가진 풍요와 다산의 주술적 의미를 담아 형편이 어려워도 버선은 꼭 지었다.
또한 민간에선 대문에 ‘동지부적’을 써 붙이기도 했다. 일반적인 부적이나 ‘뱀 사(蛇)’ 자를 써서 거꾸로 붙이는 풍속이 널리 전승됐다. 이는 원래 집에 뱀이 나타나지 않도록 기원하기 위해 하는 행위인데 잡귀를 퇴치하는 것으로까지 의미가 확대됐다.
전북 전주역사박물관은 동지를 맞아 21일까지 ‘동지섣달 꽃 본 듯이’ 행사를 운영한다. 송민경 전주역사박물관 주무관은 “작은 설이라고 불리는 동지를 맞아 뱀 사 자를 거꾸로 써서 잡귀를 막는 동지부적 만들기, 동지책력 풍속을 따라 2025년 달력 만들기 체험 등 옛날 동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며 “우리 고유의 명절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움말=‘한국세시풍속사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김보경 기자 bright@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