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백유의스포츠속이야기] 농구대통령 허재는 어디에?

2024-12-19

스포츠기자로 활동하던 1990년대 초반과 2000년대 초반 두 차례에 걸쳐 농구를 취재했다. 시대의 차이점이 있다면 1990년대는 ‘농구대잔치’로 추억되는 아마추어 시절이었는데 프로야구를 능가할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했다.

지금은 연고지를 선택한 각 팀의 홈경기가 전국에서 열리지만, 당시는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이 주무대였다. 남녀부가 함께 하루 3~4경기씩 열렸고, ‘오빠부대’로 불리던 여성팬들이 농구 스타를 보기 위해 체육관 앞에 긴 줄을 섰다.

허재와 강동희가 이끌던 당시 기아자동차는 한때 한국농구 명가였던 현대와 삼성의 아성을 깨고 5년 연속(1988~1992) 우승컵을 차지한 최강팀이었다. 기아자동차가 한국 챔피언팀 자격으로 1991년 뉴질랜드와 호주 원정에 나섰을 때 동행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취재 과정에서 허재를 비롯한 기아자동차 선수들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허재는 호탕한 성격에 항상 에너지가 넘쳤다. 해외 원정 취재 후 그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렸다. 저녁을 먹자고 전화를 했더니 허재는 불쑥 여자친구와 저녁 약속에 나왔다. 오히려 놀란 내가 “어쩐 일로 여자친구까지 데리고 나왔냐”고 물었더니 허재는 “형이 밥 먹자고 전화한 이유가 내 여자친구가 궁금해서 아닙니까”라고 되물었다. 허재는 그 정도로 직선적이고 솔직했다. 그 여자친구가 바로 허웅과 허훈의 어머니 이미수씨다.

허재는 지금 농구판에서 보이지 않는다. 한국프로농구리그(KBL)에서 제명됐기 때문이다. 은퇴 후 KCC 감독과 국가대표 감독을 지내면서 지도자의 길을 걷던 허재는 2022년 고양오리온스를 인수한 고양 데이원 공동대표를 지냈다. 인수과정에서 데이원은 대외 신용도를 높이기 위해 허재를 영입했다. 대우조선해양건설 김용빈 대표가 투자한 데이원스포츠가 오리온스를 인수해 운영하다 자금난에 무너졌다. 지금은 대명그룹이 팀을 인수, 고양 소노로 바뀌었지만 모든 책임을 허재가 뒤집어썼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허재는 법적으로 등기조차 되지 않은 껍데기 대표였다.

지난달 고양 소노의 홈경기를 보기 위해 체육관을 찾았을 때 당시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데이원이 선수들 연봉은 물론이고, 구단에서 거래를 했던 세탁소, 식당 등 거래처 대금을 갚지 않아 지역에서 원성이 자자했다는 이야기였다. 모든 책임은 데이원의 이야기를 믿고 본인의 명예를 통째로 내준 허재에게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를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에게 견주는 도덕적 잣대와 비교해 볼 때 스포츠스타의 것은 너무나도 엄중하다.

성백유 전 평창동계올림픽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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