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엔 미안하지만…" 노인기준 올리면 '생명줄 연금' 어쩌나

2024-10-29

충남에 사는 김영숙(73)씨는 오래전 남편과 사별했다. 물불 가리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렇게 딸·아들의 학비·생활비를 마련했다. 자녀가 결혼한 후 한숨을 내쉬고 잠시 허리를 펴니 어느새 본인이 노인이 돼 있었다.

'어, 탈탈 털어서 아이들 뒷바라지했는데…. 그 흔한 국민연금도 없네.'

김씨는 과거 식당을 할 때 보험료(17만원)를 내라는 독촉을 받았지만 내지 못했다. 아이들이 우선이었다. 지금 와서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 노후 대책은 그림의 떡이었다.

이중근 '75세 상향' 제안 파장

"매우 긍정적" 전문가 평가

20여 개 복지 축소 불가피

"연금수급 기준 먼저 개정"

"나라에 짐이 돼 부끄럽다"

물론 자녀들이 가끔 용돈을 주고 맛있는 음식을 사준다. 김씨는 "애들이 넉넉히 생활해도 나와 직접 연관이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특히 사위와 며느리는 다르다는 걸 느꼈다"고 말한다. 난소암을 앓은 적이 있고, 허리·다리·치아 등 어디 아프지 않은 데가 없었다. 병원비·아파트관리비·전화요금 등이 걱정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런 걱정을 날려준 게 기초연금이다. 김씨는 "노후 생활의 버팀목이 기초연금이다. 나라에 짐이 돼 많이 부끄럽고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며 "젊은 사람들에게 많이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이런 스토리를 담아 지난 7월 국민참여 공모전 최우수상을 받았다. 김씨는 매일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자이기도 하다.

노인들은 "자녀 용돈은 때로는 안 들어오지만, 기초연금은 어김이 없다"고 말한다. '한강의 기적을 일궜으니 받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많은 노인은 나라에, 젊은 세대에 미안함을 내비친다.

노인 기준 65세 유지한 지 43년

노인과 기초연금은 떼려야 뗄 수 없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후 기초연금이 노인 빈곤율을 연간 3.4~7.2%p 떨어뜨렸다. 기초연금법 제1조는 노인에게, 제3조는 65세 이상에게 지급한다고 돼 있다. 43년 전 제정된 노인복지법도 경로 우대 대상을 65세로 규정한다. 135년 전 독일의 수상 비스마르크는 노령연금을 도입할 때 지급 연령을 65세로 잡았고, 유엔은 노인 기준을 65세로 본다. 한국도 이런 걸 받아들였다.

연령 상향 비판 거의 없어

이중근 대한노인회장이 21일 노인 기준을 75세로 올리자고 제안한 후 반응이 뜨겁다. 의외로 비판 목소리는 별로 없다. 2015년 이심 전 노인회장이 70세로 올릴 것을 제안했을 때 노년유니온 등이 "노인 빈곤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었다. 복지부는 2019년 노인 외래 진료비 경감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올리려 했다가 한 발도 못 나갔다. 복지의 당사자가 제안하니 힘이 실린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굉장히 긍정적인 제안"이라고 평가한다. 이중근 회장은 저출산·고령화 해결 방안으로 연령 상향을 건의했다. 노인 기준을 매년 한 살 75세로 올려 노인 인구를 2050년 1200만명(현재 약 1000만명)으로 유지하자는 것이다. 그리되면 복지 비용 경감 효과가 클 것이다.

노인은 71.6세부터 성·학력·소득 무관

정부가 16일 공개한 '2023년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노인 시작 연령은 평균 71.6세이다. 놀랍게도 남녀·연령·학력·소득에 따라, 도시와 농촌, 배우자 유무, 가구 형태(독거·부부·자녀동거), 취업 여부, 신체 기능 제한 여부에 따라 차이가 별로 없다. 연령 상향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세부 논의로 들어가면 골치 아파진다. '연령 상향=복지 축소'이기 때문이다. 지하철 무임승차 대상자가 407만명(경기도 제외), 올해 예산 6797억원이다. 기초연금은 651만명, 24조원이다. 충북 청주시 김모(63)씨는 "부부 소득이 월 200만원밖에 안 된다. 기초연금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한다. 서울 영등포구 박정섭(70)씨는 "부자들은 혜택이 줄어드는 걸 잘 모른다"고 말한다.

"점진적 상향,충분히 예고해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2년 9월 '노인 연령 상향 조정의 가능성과 기대효과' 보고서에서 "건강 상태 개선 속도를 고려하여 2025년부터 10년에 1세 정도의 속도로 노인 연령을 올리면 2100년 73세가 되고, 생산가능인구 대비 노인 인구의 비율이 36%p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KDI는 "질병이나 장애 부담, 성·지역·소득 격차를 고려해 점진적 연령 상황 계획을 마련하고, 충분한 기간에 사전 예고하며, 적응하기 어려운 취약 집단 피해를 완화하려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재훈 교수는 "연령 기준을 올리더라도 소득이 낮은 사람(가령 65세)은 정부가 지하철 요금을 지원해야 한다"며 "대한노인회가 나선 김에 '소득이 좀 있는 사람은 돈 내고 지하철 타자' 캠페인을 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기초연금 기준 중위소득으로 바꿔야"

기초연금 자체 개혁도 필요하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의 70%에게 지급할 게 아니라 가난한 노인 위주로 좀 더 두텁게 지원하고, 한 살 한 살 올리면서 경험이 쌓일 테고 중간에 멈췄다가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준 변경 목소리도 높다. 지금 기준은 '노인의 소득 하위 70%'이다. 그래서 노인이 늘면서 대상자도 급증한다. 이런저런 공제를 고려하면 맞벌이 노인 부부의 소득인정액이 월 707만원이어도 기초연금(약 54만원)을 받는다. 아무리 좋게 봐도 후하다. 대부분 복지의 기준은 '기준중위소득의 00%' 식으로 돼 있다. 가령 기초수급자 생계급여는 기준중위소득의 32% 이하가 대상이다. 기초연금도 이렇게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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