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방송가에서 말하는 ‘예능신’이라는 존재가 있다. 이는 야구로 따지면 ‘인플레이 타구의 안타비율’을 뜻하는 ‘BABIP’과도 비교될 수 있는데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수치로 계측되거나 예상되지 않는 ‘운의 영역’을 뜻한다. 누구에게나 ‘예능신’이 올 수 있지만, 행운으로 이를 잡는 이가 대세가 되고 이 기회가 스쳐 가면 평범한 출연자가 된다.
2023년 웹툰작가 출신으로, 배우나 가수 하다못해 예능인의 척도인 방송사 공채 개그맨의 기수도 받지 못한 기안84가 MBC ‘연예대상’을 거머쥐었을 때 방송가는 놀라기도 했지만, 그 ‘예능신’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해는 기안84의 출세작 중 하나로 꼽히는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이하 태계일주) 시리즈가 시작한 해이자, 기안84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며 ‘인간승리의 아이콘’이 된 해였다.

‘태계일주’ 시리즈는 원래 ‘나 혼자 산다’를 기안84와 함께했던 김지우PD의 메인 PD 데뷔작이었지만, OTT 플랫폼을 노리다 다소 편성이 표류해 겨우 2023년 안착한 작품이었다. 기안84의 마라톤 역시 우울증 증세를 떨치기 위해 그가 갑자기 시작한 일이었다. 이 모든 운이 잘 맞아 2023년 기안84에게 몰려들 거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그리고 한 번 저점을 찍었던 운은 다시 기안84에게 오고 있다.
주식용어로 따지면 ‘저점에서 반등으로 돌아서, 우상향을 시작’했다. 기안84의 결과물들이 다시 오밀조밀 모이면서 그의 매력을 다시 한번 조명하고 있다. 넷플릭스 첫 도전작 ‘대환장 기안장’의 호평 이후 다시 ‘태계일주’의 네 번째 시즌이 고생을 예상하게 하면서 기안84의 기세가 오른다.

지난 8일 처음 공개된 넷플릭스 예능 ‘대환장 기안장’은 지난 22일 마지막 9회가 공개됐다. 비록 ‘월드스타’인 방탄소년단 진이 출연하긴 했지만, 해외에서는 인지도가 1도 없었던 기안84의 활극은 지난 7일부터 13일 집계 결과,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권 시리즈 부문 6위에 올랐고, 총 6개국에서는 TOP 10에 진입했다.
‘기이한 사고방식의 기안84가 울릉도에서 청춘들을 위한 민박을 운영한다’는 시놉시스 아래 기이한 외관의 숙소와 생활방식 그리고 손님들을 대하는 독특한 태도를 보여준 기안84는 마지막 회차를 통해 가슴 뿌듯한 감동을 안겼다. 제작진은 그의 독특한 생활방식 밑에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헌신이 있음을 간파하고, 그가 나름의 방식으로 투박하게 신경을 쓰는 모습을 곳곳에 배치해 공감대를 넓혔다.

그런 그는 다시 다음 달 11일 ‘태계일주 4’를 공개한다. 지난해 방송된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가 끝난 지 7개월 만이다. 당시 마지막 회가 3.3%(이하 닐슨 코리아 전국 가구기준)의 시청률로 막을 내리며 이전 시즌의 5~6%대에 비하면 한참 낮은 결과물을 냈던 제작진은 절치부심했다. 기안84와 덱스, 이시언, 빠니보틀이 차마고도가 있는 히말라야를 다녀왔다.
2023년 대상 수상 이후 기안84는 중량급의 예능인이 됐다. 그런 탓에 그 역시 회화나 웹툰 등 원래 직업보다는 방송에 중점을 둔 활동을 했다. 그렇게 기획된 것이 ‘태어난 김에 음악일주’나 ENA ‘기안이쎙쎄오’ 등의 프로그램이었는데, 기안84는 프로그램 형식 뒤로 숨자 매력이 떨어졌다. ‘음악일주’에서는 음악, ‘기안이쎄오’에서의 경영자문은 그에게는 맞지 않는 옷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대환장 기안장’은 기안84에게 완전한 자율도를 줘, 그의 ‘날것’ 그대로의 생활을 고스란히 드러나게 오히려 강조되게 만들었다. 그러자 재미는 살아났다. ‘태계일주 4’ 역시 기안84의 예능은 기안84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그가 히말라야 문화권의 사람들과 거침없이 섞이는 여정을 담았다.
그리고 ‘대환장 기안장’의 호평 이후 공교롭게 보름 후 ‘태계일주 4’가 이어 붙는다. 과연 예능신의 바람이 기안84에게 다시 부는 것일까. ‘태계일주 4’까지 다시 살아난다면, 그의 에능 전성기는 또 찾아올지 모른다. 그리고 이번 전성기는 그의 독특한 행실만이 아닌, 속 깊은 여정까지 담아낸 결과물이 어쩌면 더욱 오래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