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은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일을 진실이라고 믿고 착각에 빠져 고집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아니 많이 보게 된다.
중국 송나라 때 유명한 학자 증민행(曾敏行)이 지은 <독성잡지(獨醒雜誌)>의 고사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당나라 유명한 화백 대숭(戴崇)은 정원 풍경과 생동감 넘치는 소를 잘 그려 이름을 떨쳤다. 또 한간(韓幹)이라는 화백은 말을 잘 그리기로 유명했다. 이 두 화가들은 ‘한마대우(韓馬戴牛)’라고 했다. 그들이 남긴 작품에는 삼우도(三牛圖)와 귀목도(歸牧圖) 등이 있었다.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대숭이 그린 <투우도(鬪牛圖)> 한 폭이 전해오다 송나라 진종때 재상인 마지절(馬知節)이 소장하게 되었다. 그림에 남다른 일가견을 가지고 있던 마지절은 그림을 수집하고 감상하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았다. 특히 그가 소장한 <투우도>는 당나라의 유명한 명인이 남긴 작품인지라 극진히 아꼈다. 혹 그림에 벌레나 좀이 쓸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비단으로 덮개를 만들고 옥으로 족자 봉도 만들었다고 한다. 햇빛과 바람이 좋은 날을 택해 자주 밖에 내다 말리며 일광욕을 시키기도 하였다.
어느 날, 대청 앞에 그림을 걸어놓고 바람을 쐬어주고 있는데, 소작료를 내려고 찾아온 한 농부가 먼발치에서 그 그림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글도 모르는 무식한 농부가 그림을 보고 웃다니.’ 마지절은 화가 나서 농부를 불러 세웠다. “너는 대체 무엇 때문에 웃었느냐?” “그림을 보고 웃었습니다.” “이놈아! 이 그림은 당나라 때의 대가인 대숭의 그림이다. 그런데 감히 네까짓 게 그림에 대해서 무얼 안다고 함부로 비웃는 것이냐?”
마지절이 불같이 화를 내자 농부는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면서 대답했다. “저 같은 무식한 농부가 어찌 그림에 대해 알겠습니까? 하오나 저는 소를 많이 키워 보고 소가 저희끼리 싸우는 장면도 많이 보았기에 소의 성질을 조금 알고 있습니다. 소는 싸울 때 머리를 맞대고 힘을 뿔에 모으고 서로 공격하지요. 하지만 꼬리는 바싹 당겨 두 다리 사이의 사타구니에 집어넣고 싸움이 끝날 때까지 절대로 빼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센 청년이라도 소꼬리를 끄집어낼 수 없지요. 그런데 이 그림 속의 소는 꼬리를 하늘로 티켜들고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절로 웃음이….”
농부의 말에 놀란 마지절은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대청에 걸어놓고 일광욕을 시키던 대숭의 그림을 내리며 탄식했다. “대숭은 이름난 화가지만 소에 대해서는 너보다 더 무식했구나. 이런 엉터리 그림에 속아 평생 씻지 못할 부끄러운 헛일을 하고 말았도다. 그간 애지중지했던 내가 정말 부끄럽구나.”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갈등과 언론에 등장하는 사회 지도자들의 언행과 대비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확대 해석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 보인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무조건 강렬히 반박하는 사회 지도자들의 언행이 우리를 답답하게 한다. 그런 사람들이 사회를 시끄럽게 한다. 그런 언행들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자체가 싫다.
소를 키워 본 무식한(?) 농부가 마지절이 그토록 아끼던 대숭의 투우도 오류를 쉽게 보듯, 국민들도 정치 사회의 그런 언행의 오류를 쉽게 보고 안다. 그런데도 그들만 모르는 듯 행동한다. 마지절은 농부의 말에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자탄했다. 하지만 이 사회의 지도자들은 알려 주어도 모르는 모양이다. 머리가 나쁜 것인지, 판단을 못 하는 것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의 언행이 언론에서라도 사라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상은 벽천 선생의 글을 일부 차용했다.
서정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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