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 콜 어빈은 2025시즌 개막을 앞두고 코디 폰세(한화)와 함께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외국인 투수다. 지난 시즌에도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른 어빈은 빅리그에서 통산 134경기(593이닝)에 등판해 28승40패 2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 4.54의 화려한 커리어로 증명된 선수다.
두산은 외국인 투수의 계속된 부상과 부진으로 고전했던 지난 시즌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빈을 영입했다. 어빈을 향한 기대감은 컸다. 어빈은 묵직한 직구 구위에 다양한 구종으로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하는 안정적인 제구가 강점으로 선발 15승이 기대되는 선수로 지목됐다. 시범경기 등판에서는 상대팀에 구종 노출을 최소화하려고 구종 활용을 줄일 정도로 철저한 관리 속에 시즌 개막을 맞았다.
그러나 현재까지 어빈의 활약상은 높았던 기대만큼이나 큰 실망감을 안겨 준다. 어빈은 지난 17일 대구 삼성전에 선발 등판해 3이닝도 채우지 못한채 8실점하고 내려갔다. 제구가 흔들리며 고전한 어빈은 1·2회 연속 만루 위기를 자초하는 등 2.2이닝 동안 무려 13안타를 허용하며 무너졌다. 홈런도 2개나 맞았다.
에이스라는 타이틀이 부끄러운 투구 내용이었다. 아웃카운트 5개를 잡는 동안 무려 78개의 공을 던졌고, 10안타(2볼넷)를 허용했다. 주중 3연전의 첫 경기라 투수를 아껴야 했던 두산 벤치는 대량 실점에도 어빈이 조금이라도 더 이닝을 소화해주길 바랐다.
그렇지만 어빈은 3회에도 흔들렸다. 선두타자 박승규에게 홈런을 맞고 시작했다. 2사 1·2루에 몰리는 등 계속되는 난조에 어빈은 0-7로 뒤진 상황에서 교체됐다. 투구수는 96개. 교체된 김유성이 첫 타자 강민호에게 적시타를 맞아 어빈의 자책점은 8점으로 늘었다.
9위 두산은 지난 주말 최하위 키움과 2연전을 모두 승리했다. 토종 선발 최승용과 곽빈이 각각 6이닝 무실점, 7.2이닝 2실점을 잘 막아내며 돌파구를 만들었다. 이날 어빈의 등판으로 모처럼의 3연승을 기대한 팬들이 많았지만, 어빈이 제대로 찬물을 끼얹었다. 어빈은 이번 시즌 14경기에서 5승7패 평균자책 4.86을 기록 중이다. 최근 2군에서 올라온 뒤 복귀전인 지난 10일 대전 한화전에서 6이닝 2안타 6삼진 1실점으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날을 최악의 투구를 했다. 어빈은 5월5일 LG전 승리 이후 5경기에서 4패만 떠안았다.
현장에서 어빈의 투구를 지켜본 윤희상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은 “실망스러운 투구였다. (점수가 많이 나지 않는)에이스 대결에서 선취점을 내줬다면 더 열심히 던져야 하는데 1회 실점 뒤 2회를 시작하면서 스피드를 낮춰 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자를 내보내고 나서야 다시 스피드를 끌어올렸다. 에이스답지 않은 모습”이라고 짚으며 “좋게 보면 여유지만, 결과가 이렇게 나오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몇 번의 투구에서 너무 쉽게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삼성은 어빈의 첫 승(3월28일) 제물이었다. 어빈은 당시 7이닝 동안 3안타 2볼넷 4삼진 무실점이라는 최고의 피칭을 펼쳤다. 그러나 이날은 사자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윤희상 위원은 “좋은 무기를 가졌지만 전투력이 없다”며 “메이저리거로서 자존심이 높은 선수인데, 한국야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잘 준비하지 않는다면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타자들은 1m93의 높은 타점의 좌완투수로 최고 시속 155㎞의 빠른 공에 각도 큰 변화구까지 갖춘 어빈의 공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공의 스피드는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어빈의 성공 요인으로 기대됐던 제구가 KBO리그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경기당 볼넷 허용은 4.38개, 피안타율도 0.251로 높은 편이다. 14차례 선발 등판에서 8번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으나 경기마다 기복이 심하다.
“결국 심리적인 문제”라고 본 윤희상 위원은 “몇 경기만 잘 풀려 폰세처럼 압도적인 우위를 확인한다면 금방 자신감을 찾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런 경기가 정신을 차리는 약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어빈의 커리어와 구위를 보면, 쉽게 포기할 수도 없다. 어빈을 살려야 하는 두산 코칭스태프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