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이오스

2025-05-11

대법원이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인 이재명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하며 이 후보는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둔 상황에서 사법적 불확실성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서울고등법원은 결국 ‘선거운동 기회의 평등’과 ‘재판의 공정성’을 이유로 재판 일정을 대선 이후로 연기했다. 이 결정은 상급 법원의 판단과 하급 법원의 독립적 대응이 충돌하면서, 사법부 내부의 미묘한 균열을 드러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정의에 해당되는 ‘디카이오스(dikaios)’가 모든 신화와 사회적 질서의 중심이었다. 민주주의의 핵심 개념인 이소노미아(isonomia) 역시 결국 법(노모스·nomos)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정의의 이념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스 비극에서도 인간과 신의 운명을 관통하는 핵심 모티프는 늘 정의였다.

기원전 406년, 아르기누사이 해전에서 승리한 아테네 장군들은 폭풍으로 인해 전사자들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민들의 분노를 샀고, 민회는 여덟 명의 장군을 재판해 처형하려 했다. 당시 의장직을 맡고 있던 소크라테스는 이 재판이 불법임을 지적하며 투표 자체를 거부했다. 감정에 치우쳐 법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아테네 민주주의를 해친다고 본 것이다. 결국 장군들은 처형되었지만, 소크라테스의 결단은 훗날 ‘법 위에 있는 정의’의 상징으로 회자된다.

오늘날 고등법원이 대법원의 압박 속에서도 재판 일정을 대선 이후로 미룬 것은 뜨거운 정치의 한복판에서 절차적 정의를 지키려는 소수의 자세로 보인다.

한국의 대선은 대제(大祭) 중의 대제이다. 모든 신들이 자유로운 축제 분위기에서 인간들이 바친 제사를 향유하는 것이다. 대선은 각 후보들이 모시는 신들(정강정책)이 공평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세계사의 선두를 달리는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고 있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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