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 고액 보유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 '억대 코인 부자'가 1만명을 넘어섰지만, 전통 금융자산과 달리 과세 체계는 여전히 마련되지 않아 형평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27일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따르면 가상자산 고액 보유자 수는 불과 2년 만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22년 하반기 1000명 수준에 그쳤던 10억원 초과 보유자는 2023년 하반기 2500명으로 2.5배 늘었다. 이어 2024년 하반기에는 1만200명으로 치솟으며 1년 만에 4배 이상 급증했다.
최근 집계에서도 가파른 상승세는 이어졌다. 지난 5일 기준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등 국내 5대 거래소에서 10억 원 이상 가상자산을 보유한 투자자는 1만810명으로 집계됐다.
1인당 평균 보유액도 22억2889만원에 달해 단기간에 억대 자산가로 부상하는 '코인 부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1억5000만원에 육박하는 등 시장 활황이 이 같은 폭발적 증가세를 견인했다.
코인 부자 규모는 KB금융의 '2024 한국 부자 보고서'에서 집계한 10억 원 이상 금융자산가(46만1000명)의 약 2.3% 수준이다. 다만 이번 통계에는 해외거래소 개인 지갑이나 예치금 등이 포함되지 않아 실제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최근 국세청이 발표한 '2025년 해외금융계좌 신고실적'에 따르면 올해 2320명이 11조1000억원을 신고했다. 신고 인원이 지난해(1043명)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신고 금액은 7000억원이 늘었다. 이 역시 수탁형·중앙화 지갑만 신고 대상에 포함된 수치다.
이처럼 가상자산 고액 보유자 수가 빠른 속도로 늘면서, 과세 형평성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전통 금융자산은 이미 양도·상속·증여 단계에서 과세 체계가 정비돼 있지만, 가상자산 과세는 여전히 시행이 미뤄져 있다. 정부는 당초 올해부터 과세를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업계 반발과 제도적 미비를 이유로 2년 유예한 상태다.
미국은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30일 백악관이 공개한 '디지털 자산 보고서'는 디지털 자산 과세 체계 전반의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스테이킹·채굴 소득의 과세 시점, NFT의 과세 분류, 스테이킹 기능을 포함한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과세 문제 등 새로운 유형의 자산과 거래 방식에 대한 체계적인 세제 지침 필요성도 명확히 했다.
국세청(IRS)과 금융범죄단속국(FinCEN)에 중복 신고해야 하는 납세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단일 보고 체계 도입도 제안했다. 또 거래소가 고객에게 종이 형태로만 세금 신고 서류(1099-DA)를 제공하도록 한 규정을 개선해 전자적 보고 방식을 확대하는 지침도 담았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국정 과제로 지정된 디지털 자산 과세 체계가 여전히 정비되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2026년 소득세법 개정안에 디지털 자산 과세의 선진화된 입법 방향이 반영돼야 2027년 시행이 예정대로 가능하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시장 참여자와 납세자가 예측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법 개정 여부가 불확실하면 투자 포지션이나 자산 계획을 세우기 어렵고, 결국 납세 불신과 조세 저항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