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승계 사건이 무죄로 종결됐다. 하지만 판결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분식회계가 없어 무죄가 된 것이 아니라 많은 결정적 자료가 증거능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공장에 땅을 파서 컴퓨터를 묻고 콘크리트를 발라서 기계를 올려놓는 등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법원이 검찰 측의 초기 대응에 법적 하자가 있다고 보고 그 자료들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대법원에서 종결된 사건을 돌이키긴 힘들다. 하지만 삼성의 이상한 회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누군가는 그런다. 삼성 좀 가만 놔두라고. 그런데 문제가 있으면 논의는 필요하다. 삼성생명 지분법과 일탈 회계가 이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와 삼성화재의 주식을 각각 8.51%, 14.98% 갖고 있다. 최근 삼성화재의 자사주 소각으로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율은 특수관계자를 포함하면 20%에 육박하지만, 지분법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삼성화재의 최대주주이며 상호 간 인적·금전적 교류가 있음에도 관계회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삼성생명은 과거 고객에게 유배당 계약 보험상품을 판 돈으로 계열사 주식을 구입했다. 약관에는 최저배당금 외에도 주식의 시세차익이 발생한 경우 이를 고객에게 주기로 약속했다. 삼성전자 가치만 보면, 당시 5444억원은 현재 36조원이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주식을 팔지 않고 있다. 즉 삼성은 고객 돈으로 계열사의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고객에게 주기로 약속한 금액을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부채로 인식했으며 현재 약 10조원이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2023년 도입한 새 국제회계기준(IFRS 17)을 적용받지 않는 ‘일탈’을 규제기관에 허락받았다. 삼성생명은 왜 일탈을 계속 추가할까? 2025년 삼성생명의 반기보고서를 보면 답이 나온다. 삼성생명은 IFRS 17로 처리한 보험부채는 ‘0’으로 공시했다. 연 6~7%의 금리를 고객에게 지급하느라 손실이 나고 있고 현재 계열사 주식을 팔 의사가 없으며 시가가 올랐다고 하더라도 미실현 이익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삼성생명 측이 고객에게 제공할 잠재적 의무는 있지만 실제로는 고객에게 시세차익을 배분해줄 마음이 없음을 암시한다. 이런 속내가 IFRS 17로 인해 드러나길 원치 않는 것이다. 계약자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삼성전자의 시세차익을 계속해서 배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2022년 기준으로 삼성생명의 유배당 상품에 가입한 사람은 130만명이며, 대부분 70~90대 노령이다. 이분들이 모두 돌아가시면? 계약자지분조정은 사라지며, 자본으로 전환된다. 즉 막대한 시세차익은 이재용 회장을 포함한 삼성생명의 주주에게 귀속되고 계열사 지배구조는 견고해질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보험업법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30년 전의 취득원가로 인식하도록 했다. 보험업법이 개정돼(삼성생명법) 주식의 시가 반영이 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 하므로 계약자에게 시세차익이 배분될 것이다. 삼성생명법은 19대 국회 때부터 발의됐으나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는 분식회계의 대명사와 같은 기업이 있다. 엔론(Enron)이다. 이 회사는 망했지만 ‘I Enron you’라는 말이 나왔다. ‘나는 너를 속이겠다’는 뜻이 됐다. 이런 회계처리가 지속되면, ‘I Samsung you’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이는 ‘나는 재량권 내에서 너를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뜻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번 삼성생명의 지분법과 일탈 문제가 떠오른 지금, 삼성그룹이 금산분리와 지배구조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