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치가 수려해 해금강이라고도 불리는 경남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에는 ‘동삼(童蔘) 더덕’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천년 묵은 더덕이 삼베옷에 삿갓을 쓴 상주(喪主)로 변신해 읍내를 활보한다는 것. 불로장생의 영약 동삼 더덕을 손에 넣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마을 상주들은 뜻하지 않은 봉변을 당하곤 했단다.
상주 말고도 고기 낚는 강태공으로 변장했다느니, 처녀나 동자 모습을 하고 다닌다느니 소문은 분분했다. 하지만 막상 동삼 더덕을 진짜로 만난 사람은 없었다.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더덕이 영약이라니 얼핏 이해되지 않겠지만 10년 이상 야생에서 자란 더덕은 인삼 못지않게 약효와 가치가 높다고 한다.
분류상 더덕은 국화목 초롱꽃과, 인삼은 미나리목 두릅나뭇과에 속하지만 모양은 서로 닮았다. 뿌리에 사포닌 성분이 많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성인병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사포닌은 ‘혈관 청소기’ 역할을 한다. 체내 콜레스테롤과 지방을 흡착해 배출함으로써 고혈압 같은 대사질환을 예방한다.
한중일 3국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는 더덕이지만 식용으로 즐기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중국에서는 약재로 쓰고 일본인들은 관상용으로 키운다. 고려시대 송나라 사신 서긍이 저술한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관에서 매일 내놓는 나물에 더덕이 있는데 모양이 크며 살이 부드럽고 맛이 있다. 약으로 쓰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언급이 나온다.
야생에서 채취하는 것 외에 재배도 이뤄졌던 듯하다. 조선 후기 문헌 ‘증보산림경제’에는 2월에 더덕을 옮겨 심는다는 대목이 있다. 재배한 더덕은 자연산 더덕이 지닌 맛과 향기를 따라갈 수 없지만 비교적 저렴하게 판매된다. 자연산 더덕이 많이 나는 지역은 울릉도로 알려졌으며, 강원 ‘횡성 더덕’은 지리적표시제에 등록됐다.
선조들이 더덕을 얼마나 별미로 여겼는지 짐작하게 하는 야사가 있다. 조선 광해군 시절, 한효순이라는 인물이 더덕으로 밀병을 만들어 왕에게 바쳤다. 후일 한효순은 광해군의 신임을 얻어 좌의정 자리까지 올랐고 사람들은 그에게 ‘사삼각로(沙蔘閣老)’라고 별명을 붙였다. 사삼은 더덕의 다른 이름으로 ‘모래에서 자라는 삼’이라는 뜻이다. 즉 더덕을 뇌물 삼아 고위직을 차지한 것을 비꼬는 말이다.
야생 더덕은 근처에만 가도 느낄 만큼 강한 향을 내뿜는다. 야생 더덕을 캘 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약간 거리를 두고 삽을 박아 넣는다. 그런 다음 잔뿌리가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힘을 주며 흙을 걷어낸다. 자연산 더덕은 향기로운 더덕주를 만들거나 차·약재로 활용하는 일이 많다.
햇더덕을 조리할 때는 반으로 갈라 얇게 두드리고 찬물에 담가 아린 맛을 제거한다. 인기 있는 조리 방법으로는 참기름을 골고루 묻힌 더덕에 양념장 발라가며 석쇠에 굽는 ‘더덕구이’가 있다. 그 외 생채나 고추장장아찌로 만들 수 있으며 의외로 디저트로도 활용한다. 꿀에 조린 ‘더덕정과’와 찹쌀 튀김인 ‘섭산삼’은 귀한 궁중 병과였다.
가장 친숙한 더덕 요리를 꼽자면 고추장구이가 떠오를 것이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 노포 맛집인 ‘태림산채정식’에 가면 갖가지 나물과 함께 더덕구이를 맛볼 수 있다. 뿌리채소 특유의 향이 있지만 거슬리지 않는 쌉쌀함에 매콤달콤한 양념이 더해져 고기 요리 못지않은 풍미를 자랑한다. 호흡기 건강에도 좋은 더덕은 한파가 몰아치는 요즘 같은 시기 보양식으로 제격이다.
정세진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