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과가 문과에게

2024-10-11

[정보통신신문=차종환기자]

어느 산업계 컨퍼런스에서 한 패널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관련 업계의 전년대비 반토막 난 정부 예산이 화두였다.

“정부 예산을 따내기 위해 우리는 너무 기술자의 언어로 담당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닌지 돌이켜봐야 한다. 우리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그들의 체감 범위 안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항상 염두해둬야 한다.”

꽤나 일리있는 발언이다. 기술자의 언어라 함은 종사자들에게나 익숙한 여러 기술적 용어를 포함해 관련 기술의 작동 원리, 그 기술이 필요한 이유 등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검토하고 정책에 반영해 예산 편성을 결정하는 것은 관련 산업의 전문가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의 이공계 고위공무원 비율은 25.9%에 불과하다고 한다. 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이공계 출신이면 기술에 대한 이해는 훨씬 빠르고 쉽다. 그런데 돈이라는 가장 중요한 결정을 이과가 아닌 문과가 내리고 있는 형국이다. 기술로 먹고 사는 나라의 아이러니다.

인공지능, 반도체, 양자컴퓨팅, 우주항공 등 미래 먹거리 산업이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분야는 예산 걱정이 상대적으로 덜 할테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묵묵히 산업의 허리를 지탱하고 있는 분야가 훨씬 많다. 이런 산업일수록 규모가 영세해 행여 정부의 지원이 끊기기라도 하면 폐업을 고민해야 할 기업이 수두룩하다.

상황이 이러하니, 재정 담당자를 설득하기 위한 언어에 신경쓰자는 말은 매우 합리적이다. 이공계 담당자의 부재는 구조적 문제이기에 시간이 걸린다. 어쩌면 영원히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 맘을 알아주지 않는 그대를 원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요즘 유튜브를 보면 과학 및 기술 관련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해주는 채널들이 많다. 100만 구독자가 넘어가는 채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이공계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꽤나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 예산은 곧 국민의 세금이다. 산업에 대한 국민적 이해도가 향상된다면 정부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안이 된다. 해당 산업이 발전하는 데 적지 않은 힘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 산업에 대한 보다 직관적인 비전 전달이 필요한 때다.

음, 이렇게 놓고보니 기자가 해야될 일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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