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 중심부에서 불과 수㎞ 떨어진 아그보그블로시(Agbogbloshie).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폐기물 매립지 중 하나인 이곳에서는 검은 연기가 강 위로 짙은 띠를 이루며 끊임없이 흘러간다. 연기 사이에서 막대기로 불타는 전선을 뒤집는 청년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일부는 입에 물이 든 비닐봉지를 문 채 작업하는데, 불길을 조절하거나 달아오른 몸을 식히기 위해서다.
이들은 자신을 스스로 ‘버너 보이즈(Burner Boys)’라고 부른다.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25일(현지시간) 아프리카 빈곤층에게 전자폐기물 매립지가 말 그대로 ‘현대판 금광’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수년간 구리 가격이 잇따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데다 전 세계적으로 전자폐기물 발생량이 급증한 결과다.
아그보그블로시는 오랫동안 ‘세계의 쓰레기장’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고장 난 스마트폰과 노트북, 게임기부터 냉장고·에어컨, 자동차 촉매 장치까지 각종 폐기물이 이곳으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유엔의 ‘E-웨이스트 모니터 2024’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에서 발생한 전자폐기물은 6200만t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2030년까지 8200만t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기기 수명이 짧아지며 사용자 수가 늘어난 영향이다.
이 매립지는 거대한 비공식 재활용 현장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은 반입된 폐기물을 가장 작은 부품 단위까지 해체한다. 전자폐기물은 발생 국가에서 수거·재활용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2022년 기준 전자폐기물 가운데 재활용된 양은 1380만t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해외로 흘러가며 상당수가 서아프리카로 향한다.
유럽 국가들은 전자폐기물의 빈국 반출을 금지한 바젤협약에 서명했지만, 사용 가능한 중고 전자기기의 수출은 허용된다. 밀수 조직들이 이 틈과 항만의 허술한 통제를 파고든다. 전자폐기물은 ‘중고품’으로 위장돼 다른 화물과 함께 컨테이너에 실려 반출되고 있다.
20대 중반의 살라시는 레게 음악가를 꿈꾸지만, 친구 압둘라이-야쿠부와 함께 이곳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늘 충혈되고 따가운 눈 통증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운이 좋으면 하루 100세디(약 1만3000원)를 벌 수 있다. 가나 평균 소득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버너 보이즈가 떠난 뒤 남은 잿더미 속에서 쓸 만한 금속을 찾는 이들도 있다. 일부 청소년들은 슬리퍼 차림으로 그을린 모래를 뒤진다.
이곳의 문제는 수년간 지적됐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살라시와 압둘라이-야쿠부 같은 청년들은 낙후된 북부 지역 출신이다. 수도에서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올라왔지만 결국 아그보그블로시 인근 빈민가 올드 파다마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다.
매립지였던 이곳은 1990년대 이후 조직화한 재활용 경제가 형성됐다. 버너 보이즈 외에도 고철 수거인, 전자기기 해체·분쇄 노동자, 분류업자, 상인, 운송업자, 사채업자까지 수많은 이들이 얽혀 있다. 수천 가구가 이 매립지에 생계를 의존한다. 불길 옆에서는 물과 간식을 파는 여성도 있고, 어린아이가 모래 위에서 놀고 있다.
아그보그블로시에는 위계도 존재한다. 가장 아래에는 고철 수거인과 케이블 소각 노동자가 있고, 그 위로 해체·용해 노동자, 최상단에는 휴대전화 재활용 같은 전문 기술자가 있다. 살라시와 압둘라이-야쿠부는 유독한 연기에서 벗어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조금씩 돈을 모으고 있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수수료와 도구 구매 비용이 필요하다. 이 비공식 경제의 실권은 ‘빅맨’으로 불리는 이들이 쥐고 있다.
전자폐기물을 태워 금속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플라스틱 부품에서는 다량의 유독 가스가 배출된다. 독일 가톨릭 구호단체 미시오 관계자들과 함께 브뤼셀을 찾은 가나 출신 수도자는 불법 전자폐기물 수출의 피해를 알리면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쓰레기 더미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세대를 키우는 것이 꿈”이라고 FAZ에 말했다.
이들은 유럽 내 재활용 강화를 통해 불법 수출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EU 규정은 판매된 전자기기 무게의 65%를 폐기물로 회수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를 충족하는 국가는 많지 않다.
BBC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자폐기물의 소각·투기가 인체와 환경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고 경고하고 있다. 보호장비 없이 여성과 아동이 비공식 재활용 작업에 동원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국제노동기구(ILO)와 WHO는 수백만 명의 여성과 아동이 건강 피해에 노출돼 있으며 특히 태아에게는 신경 발달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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