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취재|12·3 비상계엄에 드리운 하나회의 그림자
尹캠프 영입 1호 김용현, 하나회 군 원로들과 교류하다 부정선거에 심취
극우 진영 최대 후견인 애니 챈, 윤 대통령 만난 뒤 전방위 지지
12·3 비상계엄의 명분은 부정선거 의혹 규명이었다. 보수 진영에서도 음모론으로 치부되던 부정선거론을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의 이유로 내세웠다. 실제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점령을 시도하기도 했다. 일부 극우를 제외한 보수 진영에서조차 황당해하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윤 대통령은 왜 그렇게 심취했던 걸까. 자기와 정권의 명운을 걸 만큼 절박하게 여긴 이유에 대해 누구도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또 윤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진실이라고 믿게끔 한 세력도 - 김용현과 노상원을 제외하면 -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일각에선 비상계엄이 더불어민주당의 정치적 압력을 타개할 유일한 방책이었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이는 윤 대통령이 내세우는 ‘계엄의 형식을 띤 대국민 호소’라는 주장일 뿐이다. 비상계엄 선포 담화문으로부터 이후 여러 번 내놓은 윤 대통령의 담화문 은 일관성 있게 부정선거 의혹을 사실로 믿는 듯한 정황을 보여주고 있다. 윤 대통령의 머릿속에 극우적 이데올로기와 부정선거론이 착상된 경위를 알기 위해선 대선 캠프 시절로 시간을 돌려야 한다.
윤석열은 어쩌다 부정선거론에 심취하게 됐을까
정치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인물’이다. 인물이 있어야 세력이 생기고, 세력이 있어야 권력을 얻을 수 있다. 평생 검사로 살아온 윤 대통령에게 ‘인물’이 없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대선 캠프를 꾸리자마자 검증되지 않은 인사들 을 마구잡이로 끌어모았다. 국민의힘, 특히 보수 진영에서 비주류로 분류됐던 강경파 인사들과의 교류도 잦았다. 강경파 원로 인사들은 윤석열 캠프에서 자문, 고문의 직함을 달고 자기 세력을 캠프로 끌어 들였다. 이들이 형성한 싱크탱크는 정치인 윤석열의 세계관을 새로 정립하게 된다. 그 대표 인물이 비상계엄 사태의 ‘내란 공범’ 김용 현 전 국방부 장관이다. 윤 대통령의 충암고 선배인 그는 학연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윤석열 후보의 안보 자문역이 됐다. 윤석열 캠프 영입 1호인 그는 국방안보지원본부장이란 직책을 받아 군부의 지지 세력을 모으는 역할을 맡았다. 취재 결과, 이때 김용현이 만난 인물들이 ‘하나회’ 멤버들이기도 한 육군사관학교 OB들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부정선거론을 맹신하는 인물들이다.
전두환을 필두로 한 하나회가 쿠데타를 일으킨 1979년 12월 12일 김용현은 육사 2학년 생도였다. 서울 노원구의 육사 건물에서 그는 선배들이 정권을 찬탈하는 광경을 지켜봤다. 42년이 지나서 김용현은 ‘성공한 쿠데타’의 경험을 가진 선배들을 군의 원로로 추켜세우고 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이때 김용현과 윤 대통령에게 부정선거론이 주입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육사 38기의 최고 엘리트로 손꼽히던 김용현은 2017년 대장 진급에 실패하면서 아쉬움을 남기고 군 생활을 마감했다.
하지만 2021년 윤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들면서 대선 캠프에 첫 번째로 영입됐다. 그때부터 김용현은 윤석열 정부의 가장 유력한 국방부 장관 후보로 꼽혔다. 김관진 전 안보실장이 사석에서 ‘누가 국방부 장관이 될 것 같냐’는 질문에 “김용현”이라고 단박에 답한 일화는 이를 잘 설명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예비역 장군은 “대선 시즌이 되면 예비역 장성들의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바빠지곤 한다. 각자 인맥을 동원해 유력 후보에게 줄을 대고 ‘포럼’이나 ‘안보자문단’이란 이름으로 선거를 외곽에서 지원한다”고 말했다. 평소 대학가의 강연이나 군 관련 단체와 기업 등에서 고문 역할을 받아 소일거리를 하다가도 선거판이 열리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든다는 것이다. 자기가 미는 후보가 당선하면 국방부 장·차관, 병무청장, 보훈처장, 대통령실 고위직 등 최종 계급이나 역할의 경중에 따라 논공행상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된다. 김용현에게 있어서도 자신의 고교 1년 후배가 문재인 정권의 압력에 저항하며 보수의 구원자로 떠오를 때 후배의 눈에 비친 ‘별의 순간’이 그에게도 보였을 것이다.
2021년 12월 20일, 김용현은 서울 용산의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육사 대선배 두 사람을 만났다. 예비역 대장인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과 김재창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다. 육사 17기와 18기인 이들은 김용현을 만날 당시 ‘한미자유안보정책센터’라는 단체의 회장과 부회장 직함을 갖고 있었다. 한미자유안보정책센터는 한·미동맹을 지지하고 종전선언을 반대하는 보수성향 안보 관련 단체다. 이들이 만난 시기도 ‘종전선언을 반대하는 한·미 전문가 연구 발표회’라는 세미나를 마친 직후였다.
윤석열 캠프 합류한 뒤 ‘하나회’ OB들 만난 김용현
문제는 이들이 하나회 회원이었다는 점이다.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은 1993년 3월 8일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를 숙청할 때 전격 경질된 인물이다. 12·12 쿠데타 때 수도경비사령부 33경비단장이었던 그는 반란군 지휘소가 있는 경복궁에 은신했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경복궁 모임을 진압하라며 부대를 투입시키자 직접 나서서 이를 저지했고, 진압군을 지휘하던 신윤희 중령을 회유해 하나회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당시 장태완 사령관이 내린 일곱 개의 명령 중 첫 번째가 ‘김진영을 발견하면 즉시 체포 또는 사살하라’였을 만큼 반란에 적극 가담한 인물이었다.
김재창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도 1994년 4월 문민정부의 하나회 숙군 대상에 포함돼 군복을 벗었다. 두 사람 외에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등 요직을 섭렵하다가 하나회 숙청으로 기세가 꺾인 예비역 소장 출신 최승우 전 예산군수도 한미자유안보정책센터 회원이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10·26사태) 때 계엄군으로 서울 시내를 장악한 정모 대령도 이 단체에 이름을 올렸다. 정 전 대령은 과거 구술 연구자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목표 58개를 4시간 안에 모두 점령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계엄이 원래 그런 거다. KBS나 신문사 이런 데는 무장한 1개 분대만으로 쉽게 장악했다”며 호기로운 모습을 내비치기도 했다.
재야 시절의 김용현과 연관된 또 다른 예비역 장성 단체로는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대수장)이 있다. 대수장은 12·3 비상계엄의 기획자로 지목되는 전 정보사령관 노상원(육사 41기) 씨가 부정선거를 공부한 곳이라고 밝히면서 최근 떠오른 단체다. 노씨는 계엄 직후 언론에 “나도 대수장의 회원인데 부정선거와 관련해서 강의도 듣고 했다”고 말했는데, 공조수사본부에 따르면 그는 대수장의 교육자로도 활동했다.
이에 더해 노씨가 현역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부정선거 관련 강의자료로 쓸 각종 책 과 보수 유튜버를 정리하라고 지시했다는 진술도 확보됐다. 김용현도 2020년 대수장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장군의 소리’에 출연하고, 대수장 관련 행사에도 여러 차례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수장은 2019년 문재인 정권이 북한과 맺은 9·19 군사합의에 반대하며 조직됐다. 처음엔 안보와 관련된 목소리를 내는 활동을 벌이다가 언제부터인가 유튜브 채널 ‘장군의 소리’를 통해 부정선거론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3월 중앙선관위 선거 개혁 촉구 집회에도 참여했는데, 공교롭게도 이는 한남동 공관에서 김용현 주도로 비상계엄 모의가 시작됐다는 시기와 겹친다. 대수장은 한미자유안보정책센터와도 연결돼 있다. 김재창 예비역 대장이 대수장의 1기 상임대표였기 때문이다. 하나회와의 관계도 깊다. 3기 상임대표였던 이명구(육사 29기) 예비역 소장 역시 하나회 회원이었다. 그 밖에 이 단체의 후원자 명단에 상당수 하나회 회원이 이름을 올렸다.
부정선거론에 빠진 예비역 장성들
2024년 4월 대수장이 발행한 책자에 실린 후원자 2036명의 명단을 추적했다. 분석 결과, 이 가운데 하나회 회원은 30명이다. 기수별로는 16기 1명, 18기 1명, 19기 4명, 20기 1명, 21기 6명, 22기 6명, 23기 4명, 24기 2명, 25기 3명, 26기 1명, 29기 1명이다.
후원 명단에는 김용현의 이름도 기재돼 있다. 이에 대해 대수장 측은 “김용현이 후원한 시점은 2019년 2월이다. 대수장의 정식 회원은 아니다”라고 월간중앙에 밝혀왔다.
하나회와의 관련성을 두고는, “우리가 예비역 장성단이다 보니까 후원 명단에 하나회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걸 따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노씨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지난해 2 월 노씨가 20만원을 보내온 게 있는데, 노씨와의 관계는 그게 전부라는 설명이다.
최근 대수장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윤 대통령과 김용현에게 응원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김도균(육사 44기) 전 수도방위사령관은 한 언론에서 “대수장과 연관된 육사 구국동지회에서 대통령 영치금을 준비한다는 얘기까지 들린다”고도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제보자는 “한미자유안보정책센터 이모 기획실장의 이력을 조사하면 배후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센터 홈페이지에 공개된 이씨의 군 경력은 정보부대 특수부단장으로만 기재돼 있다. 하지만 취재를 통해 그가 육사 39기로 대령 예편 후 보수주의 단체에서 활동해 온 사실을 확인했다. 김용현과는 한 기수 선후배 사이로 김용현을 센터의 행사에 초대한 인물로 파악된다. 이에 대해 이씨는 월간중앙에 “생도 시절 이후로 만난 적 없다. 근무연도 겹치지 않는다. 다만 제가 제대한 뒤 한국보수주의연합에서 활동하던 중 저희 행사에 오시라고 카톡으로 팜플렛을 보여준 적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씨는 자신의 SNS에 “암 걸린 환자는 암을 극복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암은 부정선거다”라는 글을 공개할 만큼 부정선거론의 옹호론자다. 지난 1일 모 매체에 ‘선관위는 부정선거 의혹의 세 가지 핵심 쟁점에 답해야’라는 기고문을 올리기도 했다.
누구보다 냉철한 판단력으로 한때 군을 통솔했던 예비역 장성들이 하나같이 부정선거론에 심취한 이유가 뭘까.
부정선거론은 2020년 4월 총선 참패를 극복하려는 보수 진영의 심리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중앙선관위가 민주당의 수하로 움직인다, 사전투표 수치가 조작됐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의 20년 집권 발언은 부정선거에 기반했다는 식의 루머가 퍼지며, 중앙선관위는 무소불위의 기관으로 과대포장됐다. 이번 계엄 사태 때는 선거연수원에 중국 전산 조작 요원 90여 명이 상주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믿거나 말거나 개인의 자유지만, 부정선거론이 보수 진영을 극명하게 나누고 있다는 점은 문제다. 오랜 지인 사이에서도 이 주제가 등장하면 학력과 직업을 불문하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며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관계가 끊어지는 일이 빈번하다.
이씨가 자신의 부정선거론 신념을 드러낸 대목에서 그의 인맥과 활동 영역이 쉽게 유추된다.
부정선거론의 대모(代母)를 만난 윤석열
그런 이씨가 몸담은 또 다른 단체가 있다. 한국보수주의연합(KCPAC)이다. 그는 사무총장으로 이 단체의 운영과 기획을 주도했다.
한 여권 인사도 “한국보수주의연합이 우리나라 부정선거론을 전파하는 본체”라 고 지목하며, 이 단체의 설립자이자 공동의장인 애니 챈(AnnieM.H. Chan·한국명 김명혜)을 지목했다.
애니 챈은 미국 하와이의 부동산 대부호(大富豪) 로 알려져 있다. 여러 경로로 확인한 결과, 애니 챈은 미 하와이 호놀룰루에 거주하는 백만장자로, 캘리포니아와 하와이에서 10억 달러가 넘는 부동산 프로젝트를 개발한 적 있는 사업가다. 2011년에는 남편과 함께 700평 규모의 캘리포니아 주택을 1억 달러에 매각했다. 그가 관리하는 재단들은 2020년 기준 1800만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 보수 인사들과 꾸준히 교류하며 막강한 자금력으로 부정선거론을 확산하는 데 물심양면 지원 을 아끼지 않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하나회 인사들을 간판으로 내세운 한미자유안보정책센터도 애니 챈의 영향력 아래에 속한 단체 중 하나다. 애니 챈이 기획한 부정선거 관련 행사에는 하나회 회원뿐만 아니라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민경욱 전 의원,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다수의 극우 유튜버도 자주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인사로는 최근 계엄 사태를 옹호한 고든 창(Gordon Chang)도 있다. 애니 챈은 2020년 8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각료들에게 편지를 보내 “한국의 4·15 총선은 부정 선거였다”고 주장하면서 반미 활동가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는 비상 계엄 사태 이후 극우 진영에서 전개되고 있는 ‘CIA 신고 운동’과 일맥상통한다. 이들은 민주당 지지자나 윤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인사들을 CIA에 신고하면 미국 입국이 금지된다고 주장하면서 참여를 독려한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애니 챈을 직접 만난 사실도 확인됐다. 2022년 1월 20일, 그랜드하얏트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국가와 민족을 위한 신년 기도회 및 하례식’에서다. 이 행사의 주관과 주최는 모두 애니 챈의 단체인 한 국보수주의연합과 한미자유안보정책센터가 맡았다. 주목할 점은 김용현이 이들과 만난 지 한 달 후 윤 대통령을 데려갔다는 것이다. 김용현이 애니 챈의 인사들을 먼저 접촉한 뒤 윤 대통령에게 소개한 양상이 드러난다. 두 사람의 만남 이후 애니 챈을 비롯해 연관된 인사들은 일제히 윤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다.
과거 이들과 밀접했던 한 제보자는 이렇게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직언을 수용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권력에 부화뇌동하며 주류가 되려는 이들과, 마침 사람과 세력이 부족했던 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애니 챈을 잘 안다는 이씨는 “회장님은 윤 대통령과 악수만 두세 번 한 사이다. 6개월 전 윤 대통령이 하와이 동포간담회에 참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과 달리 회장님은 유튜버들과도 아무런 친분이 없고 그들을 스폰한 적도 없다. 믿는 사람하고만 대화하지, 유튜버들 만나서는 전혀 대화할 수 없는 분”이라고 해명했다.
비상계엄을 떠도는 전두환의 망령
사실 윤 대통령은 대선 출마 초기, 보수 진영에서조차 이념 성향을 의심받았다. 문재인 정권에서 검찰 총장으로 직행하며 특혜를 받은 그가 진보 진영과 단절하고 보수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거였다. 그가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도 박근혜 정권 때 벌 어진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맡으면서였다. 그는 윗선의 반대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다가 좌천됐고, 이로 인해 진보 진영에서 국민의 검사라는 호칭을 얻었다. 한 번 밀려나면 중앙 복귀가 요원한 검찰 조직에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에 올랐다.
하지만 대권을 쥔 이후 윤 대통령은 보수 진영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을 넘어 극단으로 치달았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나 정몽준 전 대표도 초대받지 못한 대통령 취임식에 극우 유튜버들이 참석했고, 대통령실은 이들을 관리하며 정부 요직에 발탁하기 까지 했다.
비상계엄의 실마리가 된 부정선거론도 극우 유튜버들의 단골 소재였다. 윤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엔 부정선거와 중국 연관설이 그대로 적시된 것으로 알려진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직무가 정지된 뒤에도 윤 대통령은 입장문을 통해 자신 에 대한 지지활동을 유튜브를 통해 보고 있다고도 했다. 반골 검사의 아이콘에서 극우의 아이콘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다.
“검찰에 있을 때 선관위를 싹 털려고 했는데 못 하고 나왔다.” 윤 대통령이 이준석 의원을 처음 만나 꺼낸 말이다. “반대 세력이 설치면 계엄으로 싹 다 잡아들이면 된다.” 캠프 시절 김용현이 회의에서 드러냈다는 사고관이다.
그리고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 힘은 역대급 차이로 대패했다. 부정선거론은 들불처럼 번졌고, 윤 대통령은 자신의 실정에서 패배의 원인을 찾지 않고 부정선거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렇게 음모론에 오염된 대통령의 세계관은 결국 비상 계엄 발동이란 자충수로 이어졌다.
12·3 비상계엄의 요소마다 전두환과 하나회의 12·12 쿠데타 상황과 겹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국회 기능을 정지하려 했던 초헌법적 발상과 포고령 1호에 적힌 ‘처단’, 정적들을 남태령 B1 벙커로 압송하려 한 계획 등이 그렇다. 실제로 윤 대통령 측은 헌법재판소에 낸 입장문에서 김용현이 옛 계엄령 포고문을 잘못 베껴온 것을 실수로 그대로 사용 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나회의 망령이 이번 사태 전반에 드리워져 있음을 자인한 셈이다.
전직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선동하는 세뇌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의식적으로 지시를 따르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배당하는 줄도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따르게 하는 것이다. 맹목적인 행동은 후자에서 나온다.”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