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출신 노희범 변호사 “헌재서 가처분 인용” 전망
결정례도 ‘가처분 기각→본안 인용’의 불이익 고려
대통령 ‘궐위’ 때는 권한대행 “더 소극적 역할” 주장
헌재, 15일 한 대행 ‘재판관 지명 사건’ 재판관 평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지명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제기된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는 헌법학자의 주장이 나왔다. 한 대행이 지명한 재판관이 임명됐다가 향후 본안 소송에서 판단이 뒤집힐 경우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헌재가 감안할 것이란 거다.
헌법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15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헌재의 가처분을 인용하는 법적 기준 중 하나는 가처분을 기각했다가 본안 판결에서 인용됐을 때 발생하는 불이익과 반대(가처분 인용 후 본안 기각)의 불이익을 비교형량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노 변호사는 그러면서 “헌재가 가처분을 기각했다가 나중에 본안에서 한덕수 대행에게 권한이 없다고 결정할 경우 ‘무효’인 재판관이 재판한 헌재 결정도 무효가 될 수밖에 없다”며 “엄청난 법적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간의 결정례와 ‘헌법재판실무제요’에서 헌재는 ‘가처분의 필요성’에 대해 “가처분을 인용한 뒤 종국결정에서 청구가 기각되었을 때 발생하게 될 불이익과 가처분을 기각한 뒤 청구가 인용되었을 때 발생하게 될 불이익을 비교형량해 후자의 불이익이 전자의 불이익보다 클 경우 가처분을 인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헌재, 가처분-본안 판단 불이익 ‘비교형량’
헌재는 1999년 경기도가 성남시 공원 내 진입도로를 지정·인가한 것을 두고 시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에서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가 신청인(성남시)의 청구를 인용하는 종국결정을 하였을 경우 공사 진행으로 공공용지를 훼손함과 동시에 이의 원상회복을 위한 비용이 소요되는 등의 불이익이 생기게 되므로, 가처분을 인용함이 상당하다”고 결정했다.
반면 “가처분 결정을 했다가 신청인(성남시)에게 불리한 본안결정을 했을 경우 처분 상대방에게는 공사 지연으로 인한 손해가 발생하고 또 골프연습장을 이용하려는 잠재적 수요자의 불평이 예상된다는 점 외에 다른 불이익이 없다”고 봤다.
2000년엔 사법시험 1차 시험에 4회 이상 응시한 사람의 응시자격을 제한한 시행령에 대해 제기된 가처분 사건에서 “위 법률조항이 효력을 유지하면 신청인들은 곧 실시될 차회 사법시험에 응시할 수 없어 합격기회를 봉쇄당하는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입게 되어 이를 정지시켜야 할 긴급한 필요가 인정된다”며 신청을 인용한 바 있다.
앞서 한 대행은 이달 8일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신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이후 법무법인 도담 김정환 변호사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여러 단체가 헌법소원 심판과 가처분을 신청했다.

“대통령‘궐위’ 때 권한대행 행사 더 제한적”
노 변호사는 정부와 여권에서 대통령 ‘사고’와 ‘궐위’의 차이를 언급하며 한 대행이 대통령 몫 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전면으로 반박했다.
헌법상 ‘사고’는 질병이나 요양, 탄핵소추로 인한 권한 정지처럼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때이고 ‘궐위’는 사망이나 사임, 파면 등으로 대통령직이 공석인 때를 말한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궐위와 사고는 다르다고 생각을 한다. 총리께서 (이런 부분을 감안해) 판단하고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 이후 헌재에서 파면을 받기 전 ‘사고’ 때는 권한대행의 권한행사가 ‘현상유지’ 수준으로 제한되나 파면 이후엔 ‘궐위’이기 때문에 한 대행이 대통령 몫 재판관도 지명 또는 임명도 할 수 있다는 취지다.
반면 노 변호사는 “사고의 경우에는 대통령이 언제 복귀할지, 새로운 대통령이 언제 선출될지를 알 수 없다”면서 “궐위는 두 달 후면 확정적으로 새로운 대통령이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더 권한을 제한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헌재는 15일 재판관 평의를 열고 한덕수 대행의 재판관 지명이 위헌인지를 두고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처분 결과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하는 18일 이전에 나올 가능성이 있다. 헌재는 김 변호사 등이 헌법소원을 청구한 지 하루 만인 지난 10일 주심 재판부를 배당하고 이튿날 전원재판부에서 심리하기로 결정했다.
헌재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헌재의 심리 정족수에 관한 헌법재판소법 23조1항에 대해 낸 가처분을 지난해 10월 10일 접수하고 나흘 뒤인 14일 인용 결정한 전례가 있다.
다음은 15일 노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한덕수 권한대행의 재판관 임명에 대한 헌법소원과 효력정지 가처분 결과를 어떻게 전망하나
“두 가지 상황을 가정할 수 있다. 가처분을 인용했는데 나중에 본안 판결에서 한덕수 대행의 권한이 있다고 했을 때, 반대로 가처분을 기각했다가 본안에서 한덕수 대행의 권한이 없다고 결정하는 것. 후자인 경우 ‘무효’인 재판관이 관여한 헌재 결정에 엄청난 법적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게 만장일치였다고 해도 헌재가 내린 위헌 결정은 소급해서 모두 무효화해야 한다.”
―헌재가 가처분을 인용할 거라는 건가
“가처분을 인용했는데 본안에서 한덕수 권한대행이 임명할 권한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재판관을 임명하지 못한 기간은 그 사람들이 재판에 관여할 수는 없다. 향후 헌법적 분쟁이 해명된 후 임명하더라도 두 명 재판관이 없이도 7명으로 심리를 할 수 있고 그 기간도 길지 않다. 반면 이번에 가처분을 기각했다가, 나중에 본안에서 권한이 없다고 결론이 나면 법적 혼란은 엄청나게 커진다. 헌재가 가처분 사건에서 그 두 가지를 비교 형량해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이미 확립된 법리다.”
―한 대행은 18일 두 재판관이 퇴임하면 헌재 기능의 ‘마비’를 우려했는데
“헌재가 본안 결정을 내리기까지 기껏해야 두세달이면 충분할 것으로 본다. 그 사이 재판관 2명을 임명하지 않는다고 해서 (재판관 7명으로 심리정족수를 충족해) 헌재가 중단되거나 마비되는 것도 아니다. 그 이후에 적법한 권한 있는 자가 임명하면 그만이다. 더군다나 한 대행은 민주적 정당성도 없고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6월3일 새 대통령이 선출되지 않나.”
―한 대행이 두 재판관을 임명하게 되면 어떤 문제 있나
“새로 임명된 두 재판관의 자격이나, 그 재판관들이 관여한 결정의 정당성에 대해 지속해서 의문과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체적으로 헌법재판소의 위상과 권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헌법재판소나 재판관은 국가의 헌법적 분쟁을 해결하는 주체인데, 재판관 본인이 헌법적 분쟁의 대상이 돼버린다면 관여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일각에선 ‘사고’와 ‘궐위’ 시를 구분해 권한대행의 재판관 임명이 정당하다고 하는데
“‘궐위 시엔 제한이 없고, 사고 시는 복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제한이 있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건 정반대다. 왜냐하면, 사고의 경우에는 대통령이 언제 복귀할지, 새로운 대통령이 언제 선출될지를 알 수 없다. 궐위 때는 두 달 후면 확정적으로 새로운 대통령이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더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 교과서에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 언제 돌아올지 확실한지가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궐위 시에는 오히려 권한대행의 권한행사는 극히 예외적으로, 사고 시보다 더욱더 제한돼야 하는 것.”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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