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친구들은 대부분 비건을 지향한다. 육류, 생선, 우유, 달걀, 꿀 등 동물에게서 얻어지는 모든 것의 섭취를 피한다. 비건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는 일은 즐겁다. 특히 직접 한 요리를 대접받을 때는 정말 좋다. 친구들은 채소와 버섯을 맛있게 요리하는 것에 도가 튼 사람들이다. 요즘은 봄나물로 만든 요리를 같이 먹는데 가뜩이나 짧아진 봄을 충분히 즐기게 도와줘서 고맙다.
나의 비건 친구들은 모두 윤리적인 이유로 비건을 지향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을 먹는 것에 자체에 윤리적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고민이 많다. 생명끼리 먹고 먹히는 것은 자연계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일인데 덮어놓고 비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육식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우리는 아주 쉽게 다른 생명을 소비할 수 있다. 공장식 축산으로 생명을 대량으로 만들고 죽이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이건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가장 끔찍한 일 중 하나이다. 인류에게 윤리가 존재한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특정 종의 생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관리하는 일, 그 생명들을 자원으로 쓰는 일, 대량으로 학살하는 일이 매일 벌어지는 행성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끔 구역질이 난다. 비건은 이런 폭력에 저항하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비건으로 산다는 것은 힘들다. 일단 식당에 가는 것이 어렵다. 채식 식당은 거의 없고 채식 옵션을 찾아볼 수 있는 식당도 많지 않다. 거의 모든 식당은 주재료가 아니더라도, 육수나 양념 등에 동물성 재료가 들어간다. 그나마 주방에 따로 동물성 식재료를 빼달라고 할 수 있는 식당들을 알아놓고 거기서 밥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면 항상 집에서 요리해야 하는데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것도 쉽지 않다.
비건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은 이것만이 아니다. 사회에 퍼져있는 비건에 대한 편견과 혐오도 한몫한다. 일단 단체로 식사하는 것이 어렵다. 회사에서 회식한다던가 할 때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고 그렇다고 혼자 식사를 하지 않으면 백안시당하기 일쑤다. 또 이런 자리에서는 비건에 대해 은근히 불편함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비건들이 자신을 고기나 먹는 야만인으로 볼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다. 고기를 먹는 것이 윤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채식은 못 하겠다.”라고 자신을 변호하거나, “식물은 안 불쌍하냐.”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비건은 무조건 세상에 도움이 된다. 뭘 하든 세상을 나쁘게 하기 딱 좋은 시대에 이것만큼 좋은 실천도 없다. 공장식 축산을 지탱하는 육식이 세상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그것을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책임을 각각의 개인이 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 학살의 체제를 만든 자본이 있고, 그 자본이 우리로부터 이 학살을 숨기고 편안한 마음으로 생명을 소비하도록 만든 탓이 크다. 하지만 그것에 저항하는 힘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저께는 친구가 김밥을 싸 주었다 다른 것은 넣지 않고 참나물만 넣은 김밥이다. 아무도 죽이지 않은 한 끼가 참 소중했다. 나도 자연스럽게 육식을 자제하게 되었다. 아직 비건이라고 말하기가 쑥스럽지만 조금씩 실천하는 중이다. 친구들이 더 편하게 비건을 지향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천기현 시집책방 조림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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