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이 8개월째 이어지는 가운데, 의료계 유일한 법정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 임현택 회장이 탄핵 위기에 처했다. 임 회장을 수장으로 둔 의협은 그간 전공의·의대생 단체와 갈등을 거듭하며 정부를 향한 의료계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의협에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서면 전공의·의대생 단체 입장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29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협 대의원회 운영위원회는 이날 오후 8시 긴급회의를 열고 임 회장 불신임(탄핵) 안건과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구성 등을 표결에 부칠 임시대의원총회 일정을 결정한다. 총회 날짜는 준비 시간 등을 고려하면 다음달 10일이 유력하다. 김교웅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이날 통화에서 “두가지 안건으로 임시 총회가 열리는 것은 확정이고, 오늘은 총회 날짜와 그밖의 기본 준비사항들을 점검할 것”이라며 “비대위를 구성하게 된다면 언제까지 할지 등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24일 조현근 의협 대의원 등 103명은 의협 운영위원회에 임 회장 불신임 및 비대위 구성을 안건으로 하는 임시대의원총회 소집을 요청했다. 의협 회장 불신임안은 재적 대의원 3분의 1 이상(246명 중 82명 이상)이 동의하면 발의할 수 있는데, 이 요건을 사흘만에 충족했다. 발의된 불신임안은 재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한 가운데, 출석한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비대위 구성안은 재적 대의원 2분의 1 이상 출석, 출석 대의원 2분의 1 이상이 동의하면 가결된다.
의협 대의원회는 지난 8월 31일에도 임시대의원회총회를 열고 비대위 설치에 관한 안건을 표결에 부친 바 있다. 지난 5월 취임한 임 회장은 임기 6개월여만에 두번째 비대위 구성 투표에 더해 불신임 위기까지 맞닥뜨린 셈이다. 앞서 처음 이뤄진 비대위 구성안 표결에서는 참석 대의원 189명 중 131명의 반대로 부결됐으나, 두 달 사이 임 회장을 둘러싼 회원들의 불신이 강해지면서 재차 탄핵 주장이 힘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수차례 막말로 문제를 일으킨 임 회장은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는 글을 남겨 정신질환자를 비하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임 회장 탄핵을 추진한 조현욱 대의원은 발의문에서 “임 회장은 당선인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막말과 실언을 쏟아내 의사와 의협의 명예를 현저히 훼손했다"고 꼬집었다. 최근에는 임 회장을 온라인에서 비방한 지역의사회 이사를 고소한 뒤, 취하해주는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에 휩싸였다.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박단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며 의정갈등 해소에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 점에도 의사 사회에서는 불만이 일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임 회장을 향해 “상황을 왜곡하고 내부 갈등을 조장한다” “임 회장과 어떤 테이블에서도 같이 앉을 생각이 없다” 등을 날선 말로 대립각을 세워왔다.
의료계에선 임 회장이 물러난 뒤 비대위에 이어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서면 의협과 대전협의 관계가 개선되고, 사태 해결에도 물꼬가 트일 거란 기대가 나온다. 한 의협 대의원은 “도저히 지금 의협 집행부로는 전공의와 관계 개선이 어렵다고 보는 회원이 많다”며 “새로운 회장은 본인이 앞장서서 뭔가를 하기보다는, 전공의들이 나설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인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의원도 “현재 의협 집행부가 전공의·의대생들과 신뢰를 회복할 가능성은 모두 사라진 상태”라며 “어떻게든 현 사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의협이 바뀌어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