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간 공장들… 국내 노동시장 ‘된서리’ [트럼프發 관세전쟁]

2025-02-17

트럼프 2기 압박 가속

트럼프 이전엔 연평균 1546개

1기 4년간 일자리 5207개로 늘어

2021∼2023년 2만6602개 달해

2024년 삼성전자 고용의 5배 넘어

관세·규제 압박 효과 톡톡히 봐

재계선 “이제 시작 불과” 우려

韓, 최악 땐 수출액 62조 감소

“신통상 정책 전략 세워야”

‘우회 수출’ 加등 추가 관세 땐 韓 타격

대미 투자 늘수록 국내 고용도 깜깜

獨은 최대 30만개 일자리 증발 전망

경쟁국 中·印 등 관세폭탄, 韓에 기회

전문가 “무역관계·피해 축소 대응 대신

안보 등 비경제적 요소도 검토해야”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일자리가 점점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1기(2017∼2020년), 조 바이든(2021∼2024년) 행정부를 거치며 한국 기업의 미국행(行)이 유독 돋보였고, 급기야 우리나라는 2023년에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 외국(外國) 반열에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취임 직후 ‘제조업 르네상스(부흥)’를 명분으로 각국에 ‘무차별 관세 폭격’을 퍼붓는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다. 관세나 규제 등으로 압박하면 미국에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만드는 외국 기업이 늘어나는 효과를 톡톡히 체감했기 때문이다. 재계에선 현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미국 정부의 ‘한국 기업 쥐어짜기’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미국 비영리단체 리쇼어링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트럼프 1기 이전 7년(2010∼2016년) 동안 한국의 직접 투자 등으로 미국에 생겨난 일자리는 연평균 1546개였다. 이는 트럼프 1기 정부 4년간 연평균 5207개로 3배 이상 늘었고, 2021∼2023년엔 연평균 2만6602개로 폭증했다. 트럼프 1기, 바이든 행정부의 통상 압박으로 한국 기업의 현지 고용 효과가 무려 17배 늘어난 것이다.

특히 2만6602개의 일자리는 매년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삼성전자의 지난해 국내 신규 고용분(4716명)보다 5배 이상 많다.

또한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삼성전자 포함 국내 500대 기업 중 지난해 국민연금 가입자가 가장 많이 늘어난 상위 10개사의 증가분(1만3986명)을 모두 합쳐도 한국 기업이 연간 미국에서 만든 일자리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전 세계 국가 중 미국에 가장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 나라도 한국이다. 2023년 미국 내 외국인 직접투자(FDI)와 리쇼어링(해외 공장 및 자본 이전)을 종합했을 때 한국은 전체의 14%인 2만360개의 일자리를 만들며 1위에 올랐다. 이어 중국(1만8440개), 일본(1만8192개), 독일(1만6174개), 영국(1만4739개), 캐나다(1만1887개) 순이었다.

트럼프 1기 때부터의 대미 투자액을 따져도 한국은 선두를 달리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한국이 트럼프 1기부터 2023년까지 미국에 총 1600억달러(약 230조5000억원)를 투자해 주요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고, 83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 기간 한국 기업은 미국에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의 생산 공장을 지으며 현지 고용 창출에 앞장섰다. 첨단 공장에서 일할 석·박사급 고급 인력뿐 아니라 공장을 짓는 데 필요한 건설 일자리까지, 해당 지역 경제의 판도를 바꿔놓는 투자가 단행됐다.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뉴스룸을 통해 현재 공사 중인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이 170억달러(약 24조5000억원) 규모이며, 직·간접 고용 인원은 1만8161명이라고 밝혔다. 1996년 세워진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 공장까지 더하면 삼성전자 단일 기업이 2023년 한 해 텍사스 중부 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은 268억달러(약 38조6000억원)로 산출된다.

앞으로가 더 걱정인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미 투자 압박이 매우 노골적이어서다. 지난해 9월 대선 캠페인 때 그는 조지아주를 찾아 “중국에서 펜실베이니아로, 한국에서 노스캐롤라이나로, 독일에서 조지아로 제조업의 대규모 엑소더스(이탈)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우린 다른 국가의 일자리를 빼앗고 그들의 공장을 가로챌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에 입성한 뒤에는 현대제철이 미국에 철강 공장 건설을 적극 검토 중이라는 소식을 전하며 ‘관세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홍보했다(현지시간 11일).

◆“韓, 관세 전쟁 피해 최대 62兆”

문제는 국내 일자리다. 기업의 다국적 투자는 서로의 것을 뺏고 빼앗는 ‘제로섬’ 게임이다. 한국 기업의 한정된 투자금이 미국에 쏠리면 대(對)한국 투자는 줄게 마련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자리 정책이 우리나라 고용 상황과 투자 전망을 뒤흔들고 있는 뜻이다.

대미 투자 쏠림 현상뿐만이 아니다. 관세 전쟁으로 인한 수출 감소는 가뜩이나 얼어붙은 우리 고용 시장을 강타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미국 보편관세 부과 시나리오별 한국의 대미 수출 영향’ 분석에서 미국의 보편관세로 한국 기업의 대미 수출액이 64억4000만달러(약 8조9000억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대기업의 주요 우회 수출로였던 멕시코와 캐나다에 관세 25%, 우리나라가 석유화학제품 등 중간재를 수출해온 중국에 추가 관세 10%를 매기면 미국의 한국산 수입이 10.2% 감소할 것으로 추산한 것이다.

국가별·품목별·상호 관세 등 전장이 넓어지면 그 피해가 최대 448억달러(약 62조원)로 커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해 10월 발간한 ‘미국 통상정책의 경제적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조치에 각국이 보복관세를 물리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한국의 미국 수출액이 최대 304억달러(약 42조원) 감소하고,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은 448억달러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수출 감소와 국내 일자리의 상관관계에 대한 국내 최신 연구는 아직 진행형이다. 다만 한국과 함께 ‘제조업 르네상스’ 작전 대상으로 지목된 독일에선 최대 30만개의 일자리가 증발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시야 넓혀 기회로 전환해야”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차별 관세 폭격이 미칠 영향에 대해 “연구의 시계(視界)를 크게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간 우리 정부와 기업은 한·미 양자 간 무역관계 분석, 우리 기업의 피해 축소에만 초점을 맞춰 대응해왔는데 글로벌 무역의 상호작용 효과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일례로 우리의 수출 경쟁국인 중국, 인도, 유럽연합(EU) 등에 더 높은 상호 관세율이 부과되면 오히려 한국 기업의 대미 수출 시장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입장에서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유럽 등과의 무역관계에 대한 종합적 검토는 물론 각국 산업정책 조사 등으로 대한민국 신통상 정책 전략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보 등 비경제적 요소도 종합적 검토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미국이 지금의 ‘세계 전략’을 유지하려면 한국을 포함한 동맹과 파트너의 제조·산업 기반, 각 나라의 자체 국방 역량이 받쳐줘야 한다. 김상훈 선임연구위원은 “중장기 국가 전략적 이익 고려가 아직 많이 미흡하다”며 “향후 대미 통상 교섭 시 우리나라가 동맹으로서 보유한 역량과 가치를 기반으로 설득하고 대응 논리를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수 기자 d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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