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발 과잉 공급으로 국내 석유화학 공장들의 불빛이 하나둘 꺼지고 있다. 지난달 중국 정부가 발표한 '반(反)내권' 정책에 국내 기업들이 기대를 걸었지만, 공격적인 중국의 설비 신증설에 비해 미미한 수준에 그치면서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 등 5개 주요 중앙 정책기관은 지난달 18일 석유화학을 포함한 10개 산업을 대상으로 노후설비 정리 및 공급 최적화를 골자로 한 구조조정 정책을 발표했다. 이른바 '반(反)내권(内卷)' 정책, 직역하면 '과잉 경쟁에 대한 저항'으로, 무분별한 투자와 생산 경쟁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미다.
이번 소식은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도 단비처럼 들렸다. 중국 기업들이 2018년부터 석유화학 공장을 대규모로 건설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저가 제품을 쏟아냈고, 이는 국내 업체들의 글로벌 입지를 잠식시키는 결정타가 됐다. 생산량을 무기로 밀어붙인 중국발 공급 과잉이 업황 침체를 부채질한 셈이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산업 전반적인 구조조정 정책의 일환"이라며 "이를 통해 30년 이상 설비들을 2030년 이전에 퇴출시킨다는 계획에 속도가 붙으며 우리나라 역시 정부 주도 화학 산업 재편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석유화학 기업들의 석유화학 공급 과잉은 이제 그들 자신도 감당하기 힘든 상태다. 표면적으로는 낮은 기준과 제조 표준에 따라 설계된 오래된 설비를 줄이자는 게 골자다. 그러나 실상은 중국 기업들도 현지 자체의 공급 과잉으로 수익성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 업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중국 에틸렌 설비 평균 가동률은 23.55%포인트 하락했다.
다만 중국의 이같은 발표에도 국내 기업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중국 에틸렌 생산능력은 올해 기준 6100만톤으로, 전세계(2억3000톤)의 26%가량 차지한다. 일부 설비를 정리한다 한들 전체 공급 과잉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긴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이번 정책이 정한 '노후설비'에 대한 식별 기준은 작동 수명이 설계 수명에 도달했거나 실제로 가동된 지 20년 이상인 설비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에틸렌 생산설비 중 20년 이상 된 노후설비는 전체의 약 13%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들 설비 상당수는 여전히 가동 중이며, 기술 업그레이드를 통해 수익성도 유지 중이다. 이번 정책을 통한 중국 기업들의 실질적인 공장 정리는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추가적으로 설비 정리 실현도 더디게 전개될 것으로 점쳐지며 중국 현지 업계 또한 정책 실행의 실제 효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석화 사이클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번 정책은 정부 차원의 수요-공급 균형 맞추기 시도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산업은 통상 10~20년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장기 사이클 구조를 지닌다.
더 큰 우려는 노후 설비가 정리와 동시에 신증설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자급률이 100%에 가까워지고 있다. 특히 최근 5년간 20곳 이상의 에틸렌 생산시설을 추가했으며, 향후 4000만 톤 이상의 신규 증설 계획도 잇따르고 있다.
또 다른 국내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중국 석화 일부 노후설비 폐쇄 추진이 있다고 하지만 동시에 신증설도 지속 진행되고 있고, 수요 침체로 공급 과잉이 계속되는 상황이라 국내 석화기업에 큰 영향이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히려 국내 기업과 중국 업체들의 경쟁 구도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현재 중국 정부는 생산능력이 80만톤보다 낮은 설비는 짓지 말라는 압박을 업체들에 가하고 있지만, 오히려 "100만 톤 규모 신규 시설을 지을게"라며 대형화로 맞불을 놓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80만 톤 미만의 경쟁력이 낮은 업체들마저 월드스케일 규모의 대형 설비를 갖춘 강력한 경쟁자로 탈바꿈하게 된다는 의미"라며 "이런 상황일수록 국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전략적 대응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