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김모씨(30)는 참기 힘든 오한과 고열에 시달리다 응급실을 찾아 독감(인플루엔자)과 코로나19 검사부터 받았다. 검사 결과에선 모두 음성이 나왔지만 염증 수치가 높게 나와 해열진통제 수액 주사를 맞고 귀가했다. 차도가 있다고 생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씨는 턱밑에 난 작은 수포 두 개를 발견했다. 수포가 있는 턱부터 귀까지 이어지는 선을 따라 욱신거리면서 찌릿한 통증이 뒤따랐다. 통증 발생이 1~2분 간격으로 짧아지자 견디다 못해 다시 병원을 찾은 김씨는 ‘안면 대상포진’이란 진단을 받았다.
주로 어릴 적 앓았던 수두 바이러스가 신경 속에 숨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발병하는 대상포진은 고령층이 걸리기 쉬운 병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젊은 환자에게도 과도한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만성피로 등이 원인이 돼 대상포진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흔하다. 발병 초기엔 두통과 발열, 몸살, 근육통 등 다른 질환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증상 때문에 오인하기 쉽지만, 피부 감각이 저하되는 전조 증상을 보이다 3~4일 후 대상포진의 특징적 증상인 띠 모양의 붉은 발진이 나타난다. 드물게 발진이나 수포가 없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팥알 모양 수포와 함께 칼로 찌르는 듯하거나 불에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생긴다.
다만 대상포진임을 쉽게 알 수 있는 증상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문제다. 이 질환의 치료 골든타임인 ‘피부 병변 발생 후 72시간 이내’에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면 치료 효과가 더 낫지만 이 시기를 놓치기 쉽다. 감기 몸살로 오인했다가 대응이 늦어질수록 폐렴, 보행 장애, 얼굴 마비, 실명 등과 같은 합병증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아진다.
황보경 녹색병원 피부비뇨기과 과장은 “대상포진은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고 기다리면 대부분 회복되지만, 치료가 늦어질 경우 염증을 유발해 신경 손상뿐 아니라 통증 신호를 전달하는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이는 치료가 끝나도 4개월 이상 통증이 지속되는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이어져 불면증, 대인기피증, 우울증 등 정신질환까지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상포진은 백신 접종으로 예방할 수 있다. 최근 유전자 재조합 방식으로 개발된 사백신은 기존 생백신보다 안전해 면역저하자나 기저질환자도 접종할 수 있다. 또한 접종 후 대상포진에 걸리더라도 합병증 발생과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이어지지 않게 막고 증상 발현 정도를 낮추는 데도 효과적이다. 또한 생활습관 개선도 중요한데, 균형잡힌 식사를 유지하면서 과도한 스트레스를 피하고 충분한 수면으로 피로를 회복하는 것이 좋다. 또 하루 15~30분 정도 가볍게 산책하면서 햇볕을 쬐는 것도 도움이 된다.
황보경 과장은 “특히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이 있는 경우 대상포진 발병 위험이 크다”며 “만성질환자이면서 만성콩팥질환이 동반되거나 뇌졸중, 심장질환 등 심혈관 질환을 함께 겪고 있다면 더욱 적극적으로 백신 접종을 권고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