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전문가 에번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하루 속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의 대면 만남을 성사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18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지도자 개인과 개인 간에 진행되는 이른바 ‘톱다운식’ 외교를 선호하고, 이러한 방식의 외교에선 당사자 간 특별한 관계나 신뢰가 큰 힘을 발휘하기 쉽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이 트럼프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하루 속히 만나야 한다. 트럼프는 개인 간 소통에 크게 의존하는 하향식 접근법을 매우 선호한다. 외교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소통을 선호하는 사람과는 반드시 개인적 관계를 먼저 맺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최근 골프를 연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참모들이 ‘골프광’인 트럼프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가기 위한 초기 작업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최대한 빨리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양국이 함께 직면하고 있는 역내의 도전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누기를 추천한다.“
그는 37년간 미 국무부에서 근무하며 주한 미국대사관 부대사(2000~2003년)와 국무부 동아태수석부차관보(2003~2005년)를 지냈다. 한·미의 가교 역할을 한 민간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을 역임한 ‘한국통’으로,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한국어에도 능통하다.
한국의 사정을 잘 이해하고 있는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한국이 대부분을 투자한 해외 최대 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 등 한국이 미국을 지원하는 현황을 정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두 정상의 첫 통화에게 트럼프가 직접 요청한 조선업에 대한 협력은 윤 대통령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가 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조선 분야 협력을 요청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양국의 관계를 한층 발전시킬 수 있는 매우 창의적인 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조선소에서 미 해군 함정의 건조와 수리를 지원하는 것과 관련 트럼프가 생각하지 못했던 창의적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또 한국이 한국의 자체 방어력을 향상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의지를 분명히 밝히는 것도 안보를 ‘거래’로 보는 트럼프의 성향과 맞을 수 있다.”
한·미 동맹에 대한 트럼프의 입장은.
“트럼프는 한국에 대한 오랜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한·미 동맹의 가치에 대해서도 회의적이고, 심지어 미국이 왜 한국에 있는지에 대해서조차 의문을 제기해왔다. 나토 동맹국을 비롯해 한국에 대해서도 상당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할 것이다. 한국 정부도 노력하고 있지만, 트럼프의 국무부·국방부 등을 맡을 인사들이 트럼프에게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이 왜 미국의 안보에 필요하고 이익이 되는가를 정확히 설명하기를 기대한다.”
바이든 행정부 때 강화된 한·미·일 협력 기조는.
“3국 관계의 구축은 바이든 행정부의 가장 주목할만한 외교 성과다. 어렵게 구축한 삼각 파트너십은 3국 모두에게 소중한 자산이자, 향후 미국이 인도·태평양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핵심적인 메커니즘이 될 것이다. 트럼프를 포함해 미국의 어떤 지도자라도 삼각 협력의 가치를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북·미 외교에도 깊숙이 관여했던 리비어 전 차관보는 북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지북파’로 분류된다. 그는 트럼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에 나설 가능성을 매우 높게 봤다. 그러나 재개된 대화가 북한의 비핵화로 이어질 지에 대해선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김정은과의 대화가 재개될까.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국이 됐고, 핵을 폐기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 대화에 나오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들은 ‘군비통제’ 회담을 통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 할 것이다. 트럼프는 그럼에도 북핵 문제에 대한 진전을 이룬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면 대화에 응할 수 있는 사람이다. 북한은 미국에 거짓 약속을 할 가능성이 크다. 핵 제한이나 동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만약 대화가 재개될 경우 한국의 역할은.
“한국은 북핵을 다룰 때 필수 파트너다. 미·북 양측의 입장을 긴밀히 조율하는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대화에 나오면서 한국이 하게 될 역할을 그대로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불행하게도 현재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과 북한의 대화를 촉진하고 지원하는 과정에서 과거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