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이 예정됐던 지난달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였다. 하지만 경찰은 국회 앞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집회 공간을 통제했다. 마이크를 잡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 동지들 전부 다 일어나주십시오.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조합원들이 스크럼을 짜고 바리케이드 앞으로 이동하고 시민들이 “열어라”는 구호를 외치자 경찰은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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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는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됐다. 귀족노조·폭력 등의 프레임이 씌워진 민주노총이 탄핵 집회에 참여한 2030 여성·성소수자 등 광장의 시민들에겐 ‘든든한 우군’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이 노조는 필요하다고 여기지만 기성 노조는 신뢰하지 않는 사회적 인식을 바꿔내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아니라고 했다. 민주노총 부른다. 진짜로”도 새롭게 등장한 밈이다. 언제든 부르면 달려와 연대할 이들이 민주노총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졌다. 김형수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은 지난 4일 페이스북에 식사 뒤 계산을 하려는데 가게 주인이 “어떤 시민이 금속노조 고생한다고 계산하고 갔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민주노총 사무실에는 익명의 시민이 보낸 손난로가 도착했고, 금속노조로는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철야농성 때 절대 다치지 말라고 걱정하는 시민의 전화가 걸려왔다. 민주노총 상근 활동가들에겐 ‘반가우면서도 얼떨떨한 경험’이었다.
민주노총은 지난 3일 관저 앞 철야농성을 앞두고 X(옛 트위터)에 “곧 응원봉을 들고 달려와줄 우리의 ‘동지’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적었다. 이에 “민주노총을 부르지 말고 우리가 민주노총이 되자” “민주노총이 부른대서 집에 가서 깃발 들고 나왔다” 등의 호응이 이어졌고, 응원봉을 든 인파가 철야농성에 합류했다. 이번 탄핵 국면에서 도드라지고 있는 2030 여성·성소수자 등이 ‘남태령’에 이어 ‘한남동’에서도 연대를 이어간 것이다.
2030 여성인 ‘도경’은 지난달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에 보낸 글에서 “2030 여성과 기성세대 운동권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며 “민주노총과 2030 여성들은 분명 다르지만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이 보인다”고 말했다. 한 X 이용자는 “그동안 (갈라치기 하려던 이들이) ‘꿘(운동권) 묻히지 마라’고 했지만 이제 민주노총을 ‘언제든 우리와 연대해주는 사람들’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민주노총이 다른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2030 여성·성소수자 등과의 ‘만남’을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운동은 그간 노동자 간 격차 해소를 위한 연대를 말해왔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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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를 외치며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현실을 알린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파업은 원청 생산직 노동자로 구성된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대우조선지회 일부 조합원들은 되레 하청 노동자 파업을 지지하는 지회에 반발해 금속노조 탈퇴 안건을 다루는 총회 소집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 민주노총 산별노조 활동가는 “민주노총이 기업 울타리를 넘어서는 연대를 제대로 보여줘야 2030 여성뿐 아니라 다른 계층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민주노총이 길을 열고 탄핵을 외치는 것을 넘어 노동 현안을 포함해 사회대전환 이슈를 더 공세적으로 꺼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김지환 기자 baldkim@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