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혹독한 구조조정의 시기가 기다린다

2024-11-24

얼마 전 세계은행은 한국이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난 매우 성공적인 케이스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중진국을 벗어나 고소득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투자(investment), 기술 도입(infusion), 혁신(innovation)의 ‘3I 전략’이 필요하다. 저소득단계에서는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성장을 시작하지만, 중진국단계에 들어서면 해외 기술 도입과 기술 혁신으로 고소득 국가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한국은 이들 조건을 모두 달성해 1960년 1인당 소득 1200달러에서 지난해 3만3000달러에 도달했다고 평가됐다.

그러나 마냥 안주할 수는 없다. 현재 한국 경제가 대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 앞날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약진에 따라 수입 대체가 빠르게 이뤄지면서 우리의 대중국 수출이 격감하고 있다. 중국 부상에 대해 미국은 자국 내 투자를 강제함으로써 한국 내 기업의 투자가 부진하며 고용 창출도 더디다. 높은 가계 부채로 소비가 장기 침체에 놓여 있으며, 생산활동인구의 감소가 두드러져 성장이 매우 둔화되고 있다.

세계은행의 평가는 경제성장이론에 근거한 보편적인 진단으로서 일면 타당하다. 하지만 한국이 완전한 혁신의 단계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성장잠재력을 지속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즉 중진국을 넘어 고소득 국가까지의 진입에 유효했던 하향식 추진체계, 수도권 집중, 양적 인력 양성체계의 3가지를 개편해야 한다.

중앙정부 주도의 획일적 추진은 지역의 특성과 내생적 역량을 훼손해 성장 잠재력을 낮춘다. 그동안 빠른 성장을 위해 국가자원의 집중은 수도권 집중으로 나타났으며, 이제 그 정도가 심해 온갖 비효율성과 버블을 형성하는 주원인이 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고의 대학 진학률을 기록하는 양적 인력 양성체계는 교육-산업의 인력 미스매칭, 청년실업률 증가, 숙련 노동자의 감소, 외국인 인력 수입의 빠른 증가, 높은 산업재해와 부실공사문제로 연결되고 있다.

부문별 구조적 문제들은 시스템 다이내믹스(system dynamics)적으로 서로 연결이 증폭되기 때문에 모든 지표들을 균형에서 점점 멀어지게 해 그 심각성이 크다. 구조조정은 중단기적인 저성장의 희생을 수반하고 장기적인 인내를 요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호응도가 낮다. 또한 평소에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치밀하고도 꾸준히 진행돼야 한다.

보고서는 한국이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의 마지막 허들인 ‘혁신’의 단계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한 대기업의 구조조정이었다고 설명한다. 방만한 비효율적 경영에서 수익과 혁신을 위한 구조조정이 바로 그 발판이 됐다. 국가부도라는 위기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역설적으로 우리가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나는 구조조정이라는 혹독한 시련으로 얻은 교훈이다. 이는 파산과 해고라는 엄청난 희생을 치른 대가였다. 그러나 때마침 정보통신기술(ICT) 혁명이라는 글로벌 흐름에 편승하면서 짧은 기간에 극복할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위기를 겪은 이후 정신을 차린 점이다. 늘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에 익숙해 있다. 다만 지금은 위기가 갑작스럽게 나타나지 않고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구조조정을 지난하게 해야 한다.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잃어버린 20년’을 각오하고서라도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이덕희 한국과학기술원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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