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반성하고 전쟁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 연구에는 협력하지 않겠다.” 학자들의 국회라고 불리는 일본학술회의가 75년간 지켜온 신념이다.
군사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에 협력하는 것과 학문에 권력이 간섭하는 것을 막아주던 이 방파제가 무너져버리는 것일까. 이르면 11일 열리는 참의원 본회의에서 학술회의의 법인화 법안 통과가 유력하기 때문이다.
학술회의는 과학자들이 전쟁에 협력했던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정부 특별기관으로 1949년 설립됐다. 학술회의에 대한 정부 관여가 시작된 건 2020년부터다. 당시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6명의 새 학술회의 회원 임명을 자세한 설명도 없이 거부했다. 그 이유는 쉽게 엿볼 수 있다. 이 6명은 개헌, 안전보장 관련 법안, 특정비밀보호법 등 일본의 안보정책 전환에 반대 목소리를 내온 학자들이다.
임명 거부 이후 일본 정부는 학술회의의 법인화에 착수했다. 새로운 법인화 방안을 보면, 총리가 아닌 학술회의가 회원을 선임하게 하는 등 학술회의에 자율권이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기존 학술회의법 전문에 있던 “평화적”이라는 표현과 “독립된 직무를 수행한다”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또 총리가 임명한 2명의 감사가 학술회의의 업무 적법성과 예산 집행 등을 감시하도록 하게 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회원 해임에 관한 규정을 신설했다는 것이다. 담당 장관은 국회에서 “특정 이데올로기나 정파적인 주장을 반복하는 회원은 해임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발언은 학문의 자유에 정치가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하게 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임명을 거부당한 6명의 학술회의 회원 중 1명인 가토 요코 도쿄대 교수는 지난 3일 국회 앞에서 있었던 연좌농성에서 “정부에 불만을 표하는 귀찮은 조직은 없어져도 된다는 생각과 다를 바 없다”며 법인화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어로도 번역 출판된 책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의 저자인 가토 교수는 “개헌 반대” 등 일본 정부 움직임에 쓴소리해온 학자다.
방파제 붕괴는 이미 시작됐다. 정부가 학술회의에 대한 정치적인 관여를 강화하면서, 군사 연구에 참여하는 과학자가 늘어나고 있다. 방위성이 안전보장을 위한 첨단 기술 연구·개발에 연구비를 지원하는 ‘안전보장기술 연구 추진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학술회의는 연구자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강해질 수 있는 제도라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이 제도를 이용해 2015년부터 9년간 22개 대학이 약 27억엔의 연구비를 지원받았고, 지원 규모는 계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전쟁을 목적으로 한 과학 연구에 반대하는 학술회의의 신념이 언제까지 일본 과학자들에게 공유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본학술회의 법인화를 둘러싼 혼란을 보며 한국의 현실을 떠올린다. 수십개 대학이 군사 관련 학과를 설립하고 대학과 군 관계자가 협력 관계를 맺었다며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을 뉴스로 보고 있노라면, 분단국가라는 현실을 반영한다 하더라도, 학문과 군사 분야의 협력이 너무나도 비판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문과 군사 연구의 관계를 시민들의 눈으로 감시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