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93대78, 원전 운영규제 혁신이 필요하다

2024-09-24

정비·연료 교체 미국 25일, 한국 80일

20년 이상 연구에도 중요도 기반 규제 X

가동 중 정비 위한 안전 규제 혁신 필요

93대78. 국제원자력기구가 집계한 미국과 우리나라 원전의 2021~2023년 평균 가동률 비교다. 93%는 미국 원전이다. 94기 미국 원전의 평균 가동 연수는 42년이다. 40년의 최초 운영 허가 기간을 넘어선 원전들이 1년 평균 25일만 연료 교체와 정비에 쓴다는 것은 놀랍다.

우리나라 원전은 비교적 젊다. 평균 가동 연수가 25년이다. 사람으로 치면 청장년이다. 한창 일 잘할 때다. 그런데 가동률은 78%다. 정비와 연료 교체에 미국이 25일을 쓰는데 우리는 80일을 쓴다.

우리나라 대표 원전인 APR1400의 하루 전기 판매액이 20억원이니 미국 원전에 비하면 1년에 1100억원의 손실이 생기는 것이다.

60년 운영 동안 이런 상태면 새 원전을 지을 수 있는 규모의 손실을 내는 것과 같다. 또한 가동률이 낮으면 대개 성능이 나쁘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높은 가동률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원전 건설에는 최강국으로 주목받고 있는 우리 원전이 원전 운영에 있어서는 세계 평균인 82%에도 못 미친다. 탈원전을 벗어난 이후 가동률이 약간 상승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80% 언저리이다.

원전 가동률은 정비 기술, 운영 계획 등 여러 요소가 있지만 그중에 간과할 수 없는 것이 규제 영향이다. 미국이 이미 설계 수명을 넘어 계속 운전하는 원전이 대다수임에도 가동률이 높은 것은 선진화된 규제기술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오래된 원전이라도 설비관리를 잘하면 원전을 안전하게 잘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원전은 종사자와 원전 주변에 위해를 주지 않는 충분한 안전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 안전성 목표는 발전소 가동 시작부터 영구 폐로가 되기까지 만족 돼야 한다.

그러려면 꾸준한 정비와 설비교체가 이루어져야 하며 정비와 설비교체의 효과가 입증돼야 한다. 그래서 미국의 규제는 원전 설비의 안전 중요도와 이용 가능성을 평가해 항상 원전이 안전 목표를 유지하도록 관리할 수 있는 규제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이런 선진 규제기술은 원전을 운전하면서 안전설비 정비를 가능하게 한다. 이른바 가동 중 정비다. 현재의 우리 규제는 원전 가동 중에 항상 두 개의 안전설비가 대기 상태에 있을 것을 요구한다.

이런 규제에서는 둘 중 하나가 고장의 징후를 보이더라도 원전 운영자는 정비를 꺼리게 된다. 정비를 위해 한 설비를 대기 상태에서 해제하면 다른 하나가 정상이더라도 발전소를 정지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선진 규제기술은 이런 경우에 원전의 안전 목표를 준수하는 데 문제가 없다면 원전을 운전하면서 정비를 허용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고장이 난 후에 조치하는 것보다 안전에 더 낫기 때문이다. 가동 중 정비를 활성화하면 발전소 정비를 몰아서 하지 않고 운전 중에 꾸준히 할 수 있다.

원전 정지는 연료를 교체할 때만 잠시 하면 된다. 이런 규제기술의 차이가 미국 원전 가동률 93%와 우리 원전 78%의 차이를 만들게 된다.

이렇게 원전 안전을 지키면서도 높은 가동률을 가능하게 만든 선진 규제기술을 중요도 또는 리스크 기반 규제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를 도입하려는 연구를 20년 넘게 했다. 규제기관은 물론 학계, 연구계, 산업계 등 상당히 연구했다.

그런데도 도입을 안 하고 있다. 원전 최강국이 되려면 건설뿐 아니라 운영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임을 보여야 한다. 현재의 규제 상황에 세계 최고의 원전 운영을 기대할 수 없다. 가동 중 정비를 도입하는 안전 규제의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글/정동욱 중앙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