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규 칼럼] 누구를 위하여 국세청이 변하려는가

2024-10-08

(조세금융신문=김종규 본지 논설고문 겸 대기자) 국세 행정을 변화시키려는 몸부림은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개청 이래 줄곧 개혁, 혁신, 쇄신, 그리고 개선 등의 명분을 앞세워 실행했다. 국세청장의 얼굴이 바뀔 때마다 한결같았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청장의 세정관과도 다분히 맥을 함께 해온다.

개청 초기인 개화기 때는 인정과세가 하늘을 찌를 듯 판을 쳐서 그런지, 감세 관련 비리 혁파대상이 의외로 다수로 밝혀진다. 밤새 안녕이라는 속어처럼 출근해서야 보직해임 발령공고를 접하게 된다. 극비인사 조치로 직급계층 무차별 인사가 이루어졌고 그 바람에 끝내 옷을 벗게 된 간부가 한둘이 아니다.

나라 곳간 지킴이를 자처하는 국세청이다 보니 자칫 세수 만능 우선주의에 매몰되기 쉽다. 세수 확보가 지상과제 목표였고 이 때문에 조상징수라는 엄청난 ‘선납 오점 행정’을 펼친 적이 있다. 납세자의 권익이 뒷자리로 밀렸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인들 못하겠느냐는 식의 권력기관으로 또 한 번 빠져들고 만다. 검찰, 경찰, 감사원 등 4대 권력기관의 장이 부처 장관이 아닌데도 국회 인사청문회 청문 절차를 밟을 만큼 권력기관이라는 달갑지 않은 훈장(?)을 달게 된다.

걸핏하면 ‘납세자를 주인처럼’이라고 상투적이다시피 남발한다. 세원관리 측면에서 봐도 과세편의 행정이 만연되어 탈만 더 키운다. 세원 배양보다 고갈을 자초할 뿐이다. ‘전기 대비’ 과세행정은 안 좋은 비교 수치 행정이다. 매출이 들쭉날쭉 요동치고 외형이 달라졌는데 전기 대비라는 마의 잣대로 옭아매 놓고 오랜 세월 납세자의 가슴을 조여 왔기에 말이다.

어떤 시기, 어느 청장 때도 세정비리 문제가 거론되지 않은 적이 없다. 60년 세정사와 함께 직원 비리 척결을 외치지 않은 국세청장이 없으니 이 무슨 업보인가. 타 부처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답적이다는 여론 때문에 한때는 전 세무공무원이 가슴에 ‘스마일 뺏지’를 달고 근무한 적이 있다. 생뚱맞게 스마일 운동을 펼친답시고 나섰으나 행정력만 낭비한 꼴을 만들었다. 토양이 다른데 나무를 심기만 하면 다 뿌리내리겠느냐는 비판적인 평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끝내 시행착오라고 미화한다면 할 말을 잃는다. 그러나 용두사미처럼 대표적 실패작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세무비리 척결 문제는 국세청이 변하려는 핵심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팩트다. 고유업무인 세무조사권은 사유재산권을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규제하고 통제하는 과세권이다. 납세자와 유착, 비리가 급발진할 가능성을 다분히 안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허다한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세무비리 척결은 국세청이 변하려는 중심축을 이룬 ‘팩트’

-납세자의 아픔 따뜻하게 감싸는 부드러운 세정을 펼치리

-강민수 국세청장 ‘현장에 답 있다’ 일선 관서 인력재배치

금품 향응 수수 등 강도 높은 감찰을 선언한 강민수 신임 국세청장의 취임 첫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조직 기강은 항상 고위직에서 하위직으로 흐른다는 생각을 평소의 소신으로 삼고 있는 강 청장은 지난 9월 하반기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에서도 청렴과 관련한 공직기강 확립을 무게 있게 주문한다. 암행감찰에 버금가는 교차 복무감사까지도 불사할 정도다.

서울국세청 등 7개 지방국세청에서 이어지는 관서장 회의는 곧 현업 관서 현장 업무 상황을 생생하게 듣고 실무에 반영하겠다는 강 청장의 현장감 있는 의지의 표현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세정철학을 오랫동안 몸소 체험한 결과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본청과 지방청 슬림화를 포함한 인력재배치를 통한 납세현장 보강 프로젝트는 가히 일선 세무관서 인사행정 조직의 대개혁이다.

과학세정 정착과 더불어 스마트한 세정 과학화는 이미 AI를 통한 종합소득세 관련 세무상담을 수행 중이고, 이어 세무조사 대상 선별 등 주요 세목까지 확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특히 AI 기술이 접목된 탈세 적발 시스템도 도입 예정이어서 절대다수의 성실납세 국민의 수준 높은 납세의식 제고에 다시 한번 도약의 계기를 움켜쥐게 된다.

유교 경전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에 수록된 ‘수신제가 치국평천’(修身齊家 治國平天)이라는 성어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나의 수양과 가정을 깨끗이 정리한 후 나라를 다스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올바른 선비의 길을 함축한 명언이기도 하다. 수신(修身)도 하지 못하는 치졸한 인사가 항차 어떻게 치국(治國)을, 그 난해한 국세 행정을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지 살짝 깜깜해진다. 납세자를 선도할 재정역군이라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목소리를 높여 함께하자고, 신뢰해달라고 설득조차 하지 못하는 미아가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문득 오래전 해사 출신 모 세무서장의 ‘대쪽 발언’이 떠오른다. 청렴과 관련한 공직기강 확립 차원에서 전직 세무대리인 등을 만나지 못하게 한 행정 조치에 대해서 금쪽같은 소신을 피력한다. “나는 누구를 만나든 본인이 흔들리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황금을 돌같이 볼 수 있는 그의 담대함이 우러러 보인다. 당시 직급은 비록 4급 서기관 세무서장이지만 ‘작은 거인’이라고 칭송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생각이 넓어지면 그 뜻 또한 깊어진다고 한다. 창과 방패인 모(矛)와 순(盾)이 충돌해야만 그 가운데에서 산뜻한 조율이 생성되고 새로운 에너지가 솟구쳐지리라고 믿는다. 어떤 방패라도 뚫어버리는 창은 없고, 모든 창을 막아내는 방패도 없기에 그렇다. 과세권자와 납세자는 어찌 보면 모순의 관계이지만 함께 가야 할 동행자이기도 하다. 두 가지 사태가 양립하지 못하고 서로 배척하는 상태를, 마치 비 온 뒤 굳은 땅처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더디지만 나날이 확장 공개하려는 국세 행정은 납세서비스 행정을 추구하려는 터닝 포인트라 아니할 수 없다. 징벌적 과세행정을 징수 위주의 서비스 행정으로의 전환을 갈구하고 있는 요즘 국세청 앞에 놓인 과제는 그야말로 난제들뿐이다. 2년 연속 큰 폭의 세수 펑크 문제도 그중 하나다. 안으로는 구성원 간 진솔한 소통, 밖으로는 납세자의 아픔을 따뜻하게 감싸는 부드러운 세정 펼치기가 현재 진행형이다.

낡고 굴곡진 잔존 관행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인지, 낯설고 손 설어 아직은 피부에 와닿을 만큼 성숙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우직하고 대쪽같은 굳은 심기가 살아 숨 쉬는 국세청 특유의 산 역사가 우뚝 서 있어 그나마 힘 난다. 뚜벅뚜벅 흔들림 없이 오늘도 돌진하련다. 미래 100년 국세 행정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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