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거리에 울려 퍼진 외침. 그리고 그는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앞 거리에서 분신한 청년 전태일(1948~1970)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60년대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은 그를 노동운동가로 만들었다. 노동 환경을 바꾸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으나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선택은 분신이었다. 죽음으로 항거한 그는 자신의 고뇌와 결단을 유서에 이렇게 썼다.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그가 떠난 지 54년. 세상은 달라졌을까. 대한민국 노동운동은 발전했으나 안타깝게도 노동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대한민국 저임금노동자 비중은 16.2%. 20% 선을 유지하던 2000년대에 비해 감소했지만,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상위권 수준이다. 비정규직 비중도 20022년 기준 37.5%로 OECD 회원국 평균의 두 배를 넘는다. 그만큼 고용의 질이 나쁘다는 근거다. 장시간 노동 비중도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과로사와 산재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의미 있는 움직임이 있다. 노동자의 인권과 생명을 존중하는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이다. 전태일의료센터는 노동자의 의료를 지원하는 사회연대병원 녹색병원이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또 다른 사회연대병원이다.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병원비나 생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노동자병원을 만들자는 것이 건립 목적이다.
2027년 완공이 목표인 전태일의료센터는 지금 국민 모금 운동이 한창이다. 예상되는 건립비 190억 원 중 50억 원을 국민 모금으로 마련하자는 취지다. 지금까지 목표의 31.5%, 15억8천만 원이 모였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나눔과 연대 정신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11월 초에 열린 ‘전태일 의료센터 건립기금마련을 위한 이철수 판화전'을 통해서도 모금 참여의 통로는 활짝 열렸다.
여전히 열악한 노동 환경을 둘러보면 노동자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고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게 하는 병원, 나눔과 연대로 ‘아픈 사회를 치유’하는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이 우리 사회에 전하는 의미는 더 각별해진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우리를 다시 부르는 이유가 있을 터. 나눔과 연대의 정신을 살리는 이 행렬이 더 풍요로워지기를 기대한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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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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