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에게 위기는 공기처럼 흔하다. 신분증상의 성별과 외모의 성별이 달라 어디서든 아우팅(비자발적 성 정체성 노출) 위험에 놓인다. 성 정체성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질병은 고쳐야 한다”는 식의 혐오와 맞닥뜨린다. 어디서든 거부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은 불안·우울·공황장애·대인기피·은둔형 고립으로 이어진다. 이런 감정과 증상, 고립은 모두 ‘죽음’과 쉽게 연결된다.
한국의 트랜스젠더들은 ‘강요된 트랜지션(성별 전환)’을 빈번하게 겪는다. 성 정체성을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트랜스젠더들은 자발적 선택이 아닌, 살기 위한 선택으로 트랜지션에 임한다. 여기서 자기 학대 등 많은 문제가 파생된다.
정민석 사단법인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이사장은 지난 14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남녀라는) 성별이 획일적으로 구분되는 사회에서 성별 정정이나 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청소년·청년 트랜스젠더들은 ‘트랜스젠더답지 않은’ 이상한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들이 존재 자체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성별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스스로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게 된다는 취지의 말이다.
강요된 선택은 심리적·경제적 불안으로 이어진다. 박에디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 운영위원은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존중받아 본 기억이 없어서 빨리 몸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우울·불안·대인기피 등을 극복하려고 시급히 성확정 수술과 성별 정정을 택하게 된다고 했다. 경제적 자립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대출을 받는 일도 잦다. 정 이사장은 “경제활동을 시작하지 않은 20대 초반부터 알 수 없는 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대다수가 경제생활이 불투명한 현실”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트랜스젠더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한 심층 연구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지원 규모와 범위 등을 논의하려면 이들이 현재 겪는 어려움을 규명해야 하는데 제대로 된 실태 파악이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 국가승인통계조사 및 실태조사에서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의 존재를 파악하도록 관계 부처에 권고했지만,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해외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을 두껍게 보호하고, 이들을 제도 안으로 포섭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독일은 지난 1일부터 18세 이상이 스스로 성별을 변경할 수 있도록 법률을 발효해 남성과 여성뿐 아니라 ‘무기재’를 선택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했다. 오는 20일은 세상을 떠난 트랜스젠더를 추모하는 국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