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는 한국타이어

2025-04-13

광장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뜨거웠던 겨울에서 봄, 노동자들의 일터는 별일 없이 돌아갔다. 지난겨울 내내, 노동자들의 사망사고로 공장에 갈 때마다 낯선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광장의 아우성에 무관심한 기계의 규칙적인 굉음이 차갑고도 무자비한 기업의 질서를 일깨워주었다. ‘대한국민’의 운명을 좌우한 광장 민주주의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 팻말이 걸린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는 것을 노동자도, 관리자도, 기업도 아는 듯했다. 노동자는 여전히 일하다 다치고 죽었다. 기업은 여전히 ‘중대재해처벌법’ 처벌을 피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였다. 고용노동부의 부실한 관리·감독은 어떠한 변화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몇해 전 건설노동자의 죽음에 “이건 비일비재한 추락사다”라고 유가족 앞에서 멀쩡하게 되뇌던 사법부는 헌법재판소의 ‘명문’ 이후에도 그저 그런 판결문을 내놓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16년 연속 1위, ‘한국 브랜드파워’ 20년 연속 1위 기업 한국타이어는 타이어업계의 유재석처럼 보였다. 튼튼하고 좋은 타이어를 만드는 기업에 노동자는 ‘산재왕’이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한 해 동안만 15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자살, 암, 심장질환 등 온갖 원인들이 한꺼번에 터졌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46명의 노동자가 이어서 사망했다. 또 지난달에는 강풍특보에도 하청노동자가 지붕 보수 작업을 하다가 추락 사망했다. 기업도, 고용노동부도, 사법부도 ‘비일비재한’ 사망사고에 대해 그저 그런 대응이 이뤄지는 동안, 공장은 숨이 멎을 만큼 통제가 강화됐다.

한국타이어 노조에 따르면 회사 측은 ‘5대 안전수칙 징계 운영서’를 통해서, 이 안전수칙을 위반한 산재 노동자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있다. 최근 단순한 안전질서 지키기 수준의 캠페인에서 해고까지 가능한 통제로 강화됐다. 산재로 다친 노동자는 임금이 삭감된다. 회사는 매월 5만원씩 지급되는 ‘안전수당’을 6개월간 삭감한다. 산재사고가 발생하는 팀의 관리자에게는 ‘안전사고 발생부서’라는 완장을 채워 모멸감을 준다. 이 모든 징벌적 조치들은 모두 ‘안전사고 예방’이라는 명분으로 도입됐다. 2024년에는 ‘무재해 현황판’이 식당 앞에 설치됐다. 산재 은폐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제도였던 ‘무재해운동’이 현장에서 다시금 부활한 것이다. ‘무재해 달성 목표일 365일 중 달성일 29일’ 목표 일수를 채우기 위해 ‘죽지 않을 만큼의 사고’는 소소하고 사소한 사고로 치부되어 숨겨진다. 최근에는 모든 일하는 작업 공정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다. 노조가 반대해도 ‘화재 예방과 안전’을 명목으로 수백대의 고성능 카메라가 설치됐다.

노동조합이 아무리 반대해도 밀어붙일 수 있는 한국타이어의 힘,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를 강화할 수 있는 명분은 무엇일까. ‘비일비재한 사고’ 사이사이에 노동자들의 자살을 본다. 존경받는 기업 1위 한국타이어에 이토록 잔혹한 노무관리가 이뤄진다는 것을 알기는 어렵다. 그나마 사망사고라도 나야 언론에서 잠깐 관심을 보일 뿐이다.

그래서 ‘안전’을 이유로 통제는 더욱 강화된다. 어찌 되었든 죽지만 않게 하라. 오늘도 별일 없는 한국타이어 경영의 노하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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