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티 둘러싼 세대 논쟁

지난 3일 오전 8시30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 검은색 맨투맨에 회색 조거팬츠,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은 42세 회사원 김현수씨가 노트북을 켰다. 커피잔 옆엔 요즘 핫하다는 스탠리 텀블러가 놓여 있었다. “오늘은 일주일에 한 번 재택근무를 하는 날인데, 그냥 깔끔하게 입고 싶었어요. 그런데 요즘 이런 차림을 하면 ‘젊은 척하는 아재’라고 하더라고요.”
김씨는 일을 마치고 귀가한 뒤엔 와인 구독 서비스로 배달된 와인을 한 잔 따를 생각이라고 했다. “20대가 하면 감성소비라는데 40대가 하면 감성팔이래요. 꼰대 되기 싫어서 트렌드 좀 따라가는 것뿐인데….” 김씨는 씁쓸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권위적 환경서 자라 은연중에 ‘꼰대 기질’

‘영포티(Young+Forty)’는 원래 유통업계에서 젊은 감성과 문화를 기꺼이 소비하는 40대를 지칭하던 단어였다. 하지만 온라인에선 어느새 비아냥의 기표가 됐다. 특히 2020년대 초반 SNS에서 널리 퍼진 ‘스윗 영포티’라는 용어가 기폭제가 됐다. 표면상으론 ‘세련된 40대 남성’을 뜻했지만 실제론 20대 여성에게만 스윗한 태도, 20대 남직원에겐 엄격하면서 20대 여직원에게만 과잉 친절을 보이는 ‘치근덕거림’을 꼬집는 풍자였다.
직장인 이지은(28·서울 송파구)씨는 “회의 때 20대 남직원에겐 칼같이 굴면서도 여직원에겐 사람 좋은 모습으로 웃으며 다가가 커피를 사주는 40대 상사들의 진짜 문제는 ‘젊은 척’이 아니라 ‘합리적인 척’”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겉으론 개방적이라면서 얘기하다 보면 속은 전형적인 기성세대 그 자체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결혼·육아 등에 대해서도 그저 공감하는 척만 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31세 직장인 박민수씨도 같은 생각이었다. 박씨는 “정치 이슈에도 열려 있는 척하지만 실은 정답이 정해져 있다”며 “부동산 등에서 청년들의 사다리가 부러졌다는 얘길 해도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곧바로 자기 말만 하는 게 지금의 40대”라고 비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영포티 논란을 두 층위로 읽을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정치와 분리해도 읽히는 측면이 있고, 정치가 개입되면 더 복잡해지는 게 지금의 영포티 논란”이라면서다. 구 교수는 전자에 대해 “직장 내 40대가 젊은 세대를 이해하는 척하지만 실제 대화에선 공감력이 떨어져 ‘위선’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불만과 풍자가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치적 층위에 대해서는 “온라인 양극화가 세대·젠더·지역 갈등을 정치 이념과 결부시키며 문화·조직 차원의 문제를 정치적 프레임으로 환원하면서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다시 지난 4일 점심시간. 오랜만에 출근한 김씨가 후배들과 ‘힙한’ 샐러드 카페로 향했다. 커피를 마시며 “요즘은 갓생 살아야지” 같은 말을 조심스레 꺼냈지만 서로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웃는 후배들의 반응은 영 좋지 않다. 김씨는 “젊은이들이 자주 쓰는 말을 하면 ‘오글거린다’며 비꼬고, 우리 세대의 말을 꺼내면 ‘꼰대’라고 한다”며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모든 문항이 오답인 객관식 시험을 푸는 기분”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와 관련,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메타인지(자기 인식)’ 결핍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봤다. 곽 교수는 “나이나 직급이 높아질수록 사고의 틀이 굳는데도 스스로는 편견이 없다고 믿는 자기 인식의 착시가 적잖다”며 “멋지고 개방적인 이상적 자기(ideal self)와 현실의 자기(real self) 사이의 불일치가 클수록 불안·우울감이 커지고 그 틈을 대중적 풍자가 파고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매 상황에서 제3자 시점으로 자신을 객관화하고, 20대를 마냥 따라가기보다 50~60대 롤모델을 찾아 경청과 배려 중심의 어른다움을 익힐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치 커뮤니티에도 “영포티는 꼰대 진보의 마지막” “개혁을 말하지만 젠더나 기후 의제엔 보수적”이란 비난 글이 끊이질 않는다. 20대 나정연씨는 “모든 40대가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입으론 진보를 외치면서도 실제론 그 누구보다 보수적인 40대를 주위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며 “속 시원하게 ‘나는 꼰대야’라고 하면 차라리 덜 답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 40대는 가장 강력한 구매층이다. 패션과 F&B 분야도 구매를 선도하는 건 여전히 40대다. 그럼에도 ‘가성비 모르는 허세’라는 비판이 늘 따라붙는다. 이에 대해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40대 대부분은 ‘젊은 척’한다기보다 지금 시대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며 “지금은 세대가 아니라 취향으로 묶이는 시대로 바뀐 만큼 영포티를 세대 틀에 가두면 현실을 왜곡해서 바라보기 쉽다”고 경계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오르는 집값과 연금 개혁 등에서 느끼는 젊은 층의 박탈감이 상당하다”며 “돈과 권력을 모두 거머쥔 4050이 문화까지 가져가려 한다는 피해의식도 청년 세대의 반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 20대는 “이미 기득권층인 40대가 젊은층 고유의 문화까지 침범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40대는 “나이에 맞게 살라”는 20대의 규범 강요에 동의하지 못하면서 ‘영포티’ 논란은 시간이 갈수록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셈이다.
임 교수는 “4050세대는 민주화 성취의 자부심과 권위적 환경에서 자라온 흔적이 공존하다 보니 겉과 속의 불일치가 나타나기 쉽다”며 “2030은 선배 세대가 일군 기반을 인정하며 과도한 조롱을 자제하고, 4050은 과시를 줄이는 동시에 주거·고용 등 2030의 어려움에 미안함과 배려로 응답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영포티가 스스로를 ‘다리 세대’로 여기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40대 김진우씨는 “윗세대 언어도 알고 MZ세대 문화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자부한다”며 “회사에서도 나름 중간 소통자 역할을 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40대가 회의에서 혼자만 길게 얘기하면서도 ‘나는 열려 있다’는 전제를 깔아버리는 순간 대화와 소통의 문은 닫히기 십상이다. 구 교수도 “젊은 세대가 원하는 ‘어른다움’은 화려한 어휘가 아니라 일관된 배려와 실질적 지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영포티 논란에서도 드러나듯이 정치·경제·사회·문화 어느 분야에서든 지금의 40대는 ‘이중 프레임’ 속에 서 있다. 젊은 감성을 이해하려고 하면 ‘영꼰(어린 꼰대)’, 이해하지 못하면 ‘그냥 꼰대’로 취급받기 일쑤다. 진보면 ‘위선’, 보수면 ‘낡음’이란 선입견 또한 여전하다. 그 사이에서 김현수씨 같은 평범한 40대는 오늘도 끊임없는 자기 검열로 하루를 보낸다. “시대 흐름에 맞게 살아가려는 게 그렇게 엄청나게 잘못된 건가요. 치열한 생존 경쟁 사회에서 힘을 모아도 부족할 판에 20대와 40대가 꼭 이렇게 반목해야 하나요. 비아냥은 이제 그만. 서로가 조금만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어요.”
“20대 따라하기보다 경청하고 배려하길”
전문가들은 세대 갈등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라지만 최근의 갈등 양상이 이대로 방치하기엔 위험한 수준까지 다다른 만큼 사회 전체 차원에서 시급히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무엇보다 세대 전체를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조언도 곁들여진다.
정 평론가는 “원래도 세대 구분은 정치나 마케팅의 편의적 구획에 기대온 측면이 크다”며 “지금은 세대보다는 취향과 가치 등 각자의 정체성에 따라 묶이는 시대인 만큼 해법도 세대 교육 강화가 아니라 취향 기반의 교류 기회 확대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요즘 어때?” 등 의례적인 대화보다 콘텐트와 경험을 함께 소비·교류하는 방식이 훨씬 실효성이 클 것이란 얘기다.
곽 교수는 “20대를 이기려 들기보다 ‘젊어본’ 경험이 있는 40대가 포용하며 톤을 낮추는 리더십이 중요하다”며 “매 순간 스스로 ‘내가 누군가의 말을 끊진 않았는지’ ‘혼자만 얘기하고 있진 않았는지’ 등 체크 리스트를 점검하는 것도 ‘영포티’ 논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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