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디어 특훈도 받았다…LG전자, '외국 기업 무덤' 인도서 굳건한 비결

2025-10-27

“나마스떼(안녕하세요)”로 시작한 연설이 힌디어로 계속되자 객석에서 ‘와’ 하는 환호가 터졌다. 한국인 연사가 “오늘 LG전자 상장은 인도 국민과 함께 펼칠 미래입니다”라며 힌디어 연설을 마치자 박수가 쏟아졌고, 사회를 맡은 인도인 아나운서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연사는 전홍주 LG전자 인도법인장(전무). 지난 14일 인도 뭄바이 국립증권거래소(NSE)의 LG전자 인도법인 상장 기념식에서다. 인도인 국립증권거래소장도 영어로 축사했는데, 전 법인장이 2분 남짓한 기념사를 힌디어로 소화한 거다.

이 모습은 ‘처음부터 끝까지 힌디어 연설한 LG 법인장’이라는 제목의 영상으로 인도 현지 매체 유튜브·페이스북 등을 통해 수백만 회 조회됐다. LG전자가 ‘외국 기업의 무덤’이라는 인도의 마음을 어떻게 훔쳤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도법인 시총 〉 LG전자 본사 시총

27일 LG전자 인도법인 주가는 공모가보다 44.6% 올라 거래되고 있다. 인도법인 시가총액은 1조1960억 루피(약 18조2034억원)로, 국내 유가증권에 상장된 LG전자 본사 시총(27일 종가 기준 14조4969억원)을 뛰어넘었다. 본사는 이번 상장으로 1조8000억원의 현금을 인도 자본시장에서 국내로 조달했다.

LG전자 상장이 인도 증시에 활기를 더하자, 현지 힌디어 매체들이 구인회 회장의 LG 창업 스토리를 소개하는 등 그룹 전반이 인도의 관심을 받고 있다. LG전자 안팎에선 하루아침에 이룬 성과가 아닌, ‘28년 현지화 전략’의 열매라고 평가한다.

시골 고객에 명함 건네는 법인장

LG전자는 지난 1997년 인도 정부의 외국인 투자 촉진 정책을 기회로 진출했다. 앞서 인도 회사와 합작했다가 실패의 쓴맛을 본 뒤다. 김광로 초대 인도법인장은 처음부터 ‘완벽한 현지화’를 고수했다. 대개 본사에서 파견하는 인사·영업·마케팅 임원을 모두 인도인에게 맡겼고, 당시로는 드물게 제품 연구개발팀을 현지에 배치했다. 인도 전통 의상인 긴 사리를 넣어도 엉키지 않도록 회전 날개를 없앤 세탁기, 채소 보관용 냉장실을 크게 만든 냉장고 등이 여기서 나왔다.

김 법인장은 인도 시골 대리점마다 방문해 고객에게 자신의 휴대폰 번호와 이메일이 적힌 명함을 건넨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노력 끝에 LG전자는 인도 진출 2년 만인 1999년 컬러TV로 시작해, 가전 1위를 하나씩 점령했다. 지난 상반기 LG전자는 인도 냉장고(29.9%), 세탁기(33.5%), 에어컨(18.0%), TV(27.5%) 등에서 1위다(레드시어 리포트).

2023년 부임한 전홍주 법인장도 ‘현지화 DNA’를 이어받았다. 부임 첫해 50개 이상 지사를 죄다 방문해 지역 거래선을 챙겼다. 이번 상장을 앞두고는 인도 직원들에게 한 달간 힌디어 집중 훈련을 받았는데, 특정 지역에 치우치지 않는 표준 억양 구사에 신경 썼다고 한다. 전명윤 「주간 인도동향」편집장은 “한국 외교관이나 기업 법인장이 힌디어로 이 정도 연설한 걸 처음 봤기에 현지 반응이 뜨겁다”라고 했다.

‘신흥국 공략법’ MBA 모범 사례 출판도

LG전자 인도 사업은 세계 경영학계가 인정하는 ‘신흥국 공략법’ 모범 사례다.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이 2008년 신문범 당시 법인장 등을 인터뷰해 사례 연구로 출간하기도 했다.

인시아드는 ‘본사는 수익률만 통제하고, 그 외에는 인도에서 결정한다’는 자율과 책임, 삼성전자보다 2년 늦게 진출하고도 4개월 만에 인도 전역에 지점을 낸 속도전 등을 비결로 꼽았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부 지역에까지 영업망을 구축한 해외 브랜드는 처음이었다는 거다. 사무실이 마련되기도 전에 영업팀 채용을 마치고, 직원들이 지점장 자택으로 출근해 업무를 시작한 사례도 소개됐다.

미·중 관세 폭풍으로 전 세계 소비 심리가 위축된 지금 인도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제조 생산지이자, 바로 판매할 수 있는 소비 시장이어서다. 대형 가전을 주력으로 하는 LG전자의 실적은 글로벌 물류비·관세 변동에 직접 영향을 받는데, 인도 시장은 여기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조주완 대표가 인도를 “LG전자 글로벌 사우스 전략의 거점 국가”라고 강조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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