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재활용 책임, 왜 소비자에게 떠넘겨졌나

2025-11-09

[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플라스틱 재활용 위기는 기술 부족이 아니라, 70여 년간 설계된 ‘책임 전가의 역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포장·음료 업계가 대중 캠페인과 로비를 통해 폐기물 문제를 구조적 결함이 아닌 개인과 지방정부의 도덕·행정 문제로 둔갑시켜 왔다는 것이다.

조나단 베이커 호주 애들레이드대학교 전략학 수석 강사는 최근 기고에서 호주 재활용 시스템이 연질 플라스틱 회수 실패, 도로변 오염 확대, 주(州) 간 정책 혼선 등으로 “위기에서 위기로” 내몰리고 있지만, 그 뿌리는 기술이 아니라 역사적·도덕적 문제에 있다고 짚었다.

플라스틱 책임 전가 전략은 1950년대 미국에서 본격화됐다. 버몬트주가 깨진 유리병으로 인한 가축 피해를 이유로 일회용 병을 일시 금지하자, 음료·포장 회사들은 ‘킵 아메리카 뷰티풀(Keep America Beautiful)’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조직했다. 이 단체는 쓰레기 투기를 개인의 부도덕함으로 규정하고 “깨끗한 시민”을 호소하는 캠페인을 전개하며, 포장 설계와 공급망 구조, 기업 인센티브 같은 근본 원인들을 시야 밖으로 밀어냈다.

연구에 따르면 이 같은 도덕적 스토리텔링은 규제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냈다. 기업들은 이후 재활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플라스틱에도 재활용 로고를 붙이도록 로비하는 한편, 생산자 책임을 강화하는 용기 예치금 제도에는 조직적으로 반대했다. 재활용은 일회용 포장 경제를 유지하는 ‘기분 좋은 해법’으로 소비자에게 제시됐지만, 실질적으로는 책임 회피 수단에 가까웠다는 비판이다.

이 서사는 곧 호주로도 옮겨갔다. 1966년 유리 제조업체와 양조장의 지원으로 ‘킵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뷰티풀(Keep South Australia Beautiful)’이 출범한 데 이어, ‘킵 오스트레일리아 뷰티풀(Keep Australia Beautiful)’이 전국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는 일관되게 시민의 수치심과 개인 책임을 강조하며, 생산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건드리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시민을 훈육하고, 시스템은 보호하는” 동일한 공식이 호주에서도 반복된 것이다.

업계의 영향력은 캠페인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에서 포장·음료 기업들은 재활용 수거·처리 비용을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로 법제화하도록 로비해, 폐기물 관리 비용을 납세자에게 떠넘겼다. 내부 연구를 통해 대규모 플라스틱 재활용이 기술적·경제적으로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소비자에게는 “헹구고, 분류하고, 잘 버리라”는 메시지만 퍼뜨렸다.

이 구조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큰 틀에서 바뀌지 않았다. 정부와 업계의 주요 메시지는 여전히 요거트 용기 헹구기, 라벨 확인, 오염 방지 등 개인 실천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일회용 포장 생산 속도는 어떤 지자체 시스템보다 빠르며, 전 세계 생산 플라스틱 가운데 실제 재활용된 것은 약 9%에 불과하다. 호주에서 연질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고, 값싼 화석연료 기반 버진 플라스틱 생산량은 재활용 원료를 15대 1 이상 압도한다. 시스템은 환경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를 설계한 포장·음료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정교하게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개인의 분리배출이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책임을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베이커 수석 강사는 실질적 전환을 위해 세 가지 제도 개편을 제안한다. 첫째, 예치금 반환 제도를 전국적으로 확대·조화해 도로변 재활용보다 훨씬 높은(유럽 기준 90% 이상) 회수율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확대생산자책임제(EPR)’를 강화해 포장·음료 생산자와 유통업체가 수거·재활용 인프라 비용을 직접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재활용 소재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도록 버진 플라스틱 생산을 규제하고 상한을 두지 않으면, 순환경제는 구조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활용의 역사는 결국 시민의 무관심이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이며, 기업들이 도덕적 서사를 활용해 책임을 전가해온 과정의 역사라는 게 이 분석의 핵심이다. “쓰레기 벌레”에서 “재활용 영웅”까지 이어진 캠페인의 이면에는 시민이 실천을 떠맡고, 지방정부가 비용을 감당하며, 기업이 이익을 유지하는 비대칭 구조가 놓여 있다.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소비자 교육이 아니라, 이야기의 방향과 제도 자체를 다시 쓰는 일이라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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