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ESG 유행'은 가도 'G'는 남는다

2025-11-08

박주홍 라이프자산운용 변호사

불과 2~3년 전만 해도 시장의 가장 뜨거운 화두였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대한 피로감이 역력하다. 성과 측정이 모호한 'E'(환경)와 'S'(사회) 영역에서 '그린워싱(Greenwashing)' 논란이 이어지고, 실질적인 기업가치 제고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부터다.

ESG의 유행은 정말 끝난 것일까? 표면적으로는 그럴지 몰라도, 본질을 들여다보면 '진짜'는 이제 시작이다. 'E/S'의 마케팅 거품은 걷히고 있지만, 'Governance'(지배구조)라는 핵심 과제는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G'는 유행이 아닌,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의 본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한국 기업의 'G'는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 받아왔다. 지배주주의 과도한 경영 간섭, 낮은 배당 성향과 불투명한 자본 배분, 이사회의 '거수기' 역할, 그리고 무엇보다 지배주주 개인의 이익을 위해 회사와 일반주주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터널링(사익 편취)' 행위가 만연했다. 이는 명백히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어 왔다.

'E'와 'S'가 종종 '선택'과 '마케팅'의 영역에 머물렀다면, 'G'는 '법'과 '책임'의 영역이다.

'G', 즉 지배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이는 기업 경영의 '규칙'이자 '틀'이기 때문이다. 'G'가 투명하고 공정할 때, 이사회는 경영진을 제대로 감시하고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자본을 배분한다. 반대로 'G'가 무너지면, 앞서 언급한 한국 기업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발생하며 기업이 창출한 이익이 주주에게 돌아가지 않고 특정인에게 유출되거나 비효율적인 곳에 낭비된다. 즉, 주주의 부가 다른 곳으로 이전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G'가 'E', 'S'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G'가 바로 서야 'E'(환경)와 'S'(사회)에 대한 투자도 진정성을 갖는다. 이사회가 주주를 무시하는데, 어떻게 지속가능한 미래(E)나 사회적 책임(S)을 위한 장기적 투자를 제대로 실행할 수 있겠는가.

최근 이러한 'G'의 중요성은 단순한 당위성을 넘어 법적·제도적 의무로 강화되는 추세다. 특히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로 확대해야 한다는 상법 개정이 대표적이다. 이는 이사회가 더 이상 지배주주의 이익이 아닌 '총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위해야 함을 법제화했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책임이 시대적 요구임을 명확히 했다. 문제는 많은 기업이 이 'G'의 개선을 여전히 '자율'에 맡겨두려 한다는 점이다. 경영진의 선의나 '자발적인' 변화에 기댄 거버넌스 개선은 더디거나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 지점에서 행동주의 운용사의 역할이 명확해진다. 행동주의는 'G'를 바로 세우는 가장 실효성 있는 '시장 메카니즘'이다.

이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다. 최근 '금융지주사'의 극적인 재평가가 이를 증명한다.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막대한 순이익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인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원인은 명확했다.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에게 적극적으로 환원(배당, 자사주 매입·소각)하는 대신, 내부 유보금으로 쌓아두는 불투명하고 비효율적인 자본 배분 정책, 즉 명백한 'G'의 문제였다.

이에 '주주환원 정책 정상화'를 요구가 거세지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각 금융지주사들은 경쟁적으로 구체적인 중장기 주주환원 로드맵을 발표했고, 시장은 수년간 이어진 저평가를 해소하는 '밸류업 랠리'로 화답했다. 이는 'G'(자본 배분)의 개선이 어떻게 즉각적인 주가 재평가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행동주의가 그 변화를 이끄는 '촉매제'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명확히 보여준 사례다.

ESG라는 포장지의 유행은 중요하지 않다. 본질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간인 거버넌스의 후진성을 극복하는 것이다. 진정한 '기업 밸류업'은 구호가 아닌, 행동주의를 통한 'G'의 실질적인 개선에서 시작된다. 이사회가 지배주주가 아닌 '총주주'를 위해 일하도록 강제하는 투명하고 책임 있는 거버넌스, 그 토대 위에서만 한국 증시의 진정한 도약은 가능하다.

hyun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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